삼지창 칼럼

무속문화를 주도하는 굿당 문화

愚悟 2008. 6. 13. 12:16

무속문화를 주도하는 굿당 문화

요즘은 굿당이 굿 문화를 주도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90년대부터 급격히 늘어난 굿당, 굿당으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나면서부터 급격히 늘어났다. 산골짜기 웬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들어서는 것이 굿당이다 보니 굿당 간의 경쟁이 붙어 서비스의 질도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야 무교인으로서 나쁠 것도 없지만 지나친 서비스로 인하여 굿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굿을 할 때 진설하는 상차림을 주도하다 보니 무교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따라가기만 하니 굿당 문화가 굿 문화를 주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먼저 지나친 서비스로 인하여 예전과 달라진 것은 제물의 구입부터 상차림까지 모든 것을 굿당에 의뢰하는 무교인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법에도 어긋나는 상차림을 하여도 무교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예를 들면 천신에 제를 드릴 때는 반드시 둥근 제기나 접시를 이용하여 과일을 쌓아 바쳤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접시도 제기도 아닌 네모난 쟁반에다 앞에는 과일을 놓고 뒤는 종이컵으로 눈가림하는, 많아 보이면서 보기만 좋게 상을 차리고 있다. 정면에서 보면 보기도 좋고 푸짐하게 보이지만 뒤를 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신령님께 정성을 드리는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상차림을 한다는 것은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굿당에서 그런 상차림을 볼 때마다 제가집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창피한 생각이 든다. 혹 제가집이 술을 따르거나 굿상 뒤편으로 갈 때 과일 뒤에도 당연히 과일인줄로만 알았는데 과일이 아니라 종이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만 하여도 아찔하고 두렵기만 하다. 또 이런 상차림을 무교를 공격하려는 집단들이 본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굿 돈은 많이 받고 제물은 조금차려 제가집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이렇게 상을 차렸다고 공격하여도 아무런 할 말이 없게 된다.

무교인이 굿을 하나 띄기 위해선 입에 단내가 난다고 한다. 그만큼 요즘은 굿을 띄기가 힘이 든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무교인이 너무 상업적으로 굿을 남발하고 강요한 결과 얻은 자성자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입에 단내가 나게 설득하고 이야기 하여 굿을 하나 띄었다면 굿을 띌 때보다 더욱 지극정성으로 굿을 준비하여야 하건만, 우리 무교인들은 굿을 띄는데 만 열중하지 굿을 준비할 때는 굿을 띌 때에 들이는 정성의 반도 안 쓰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굿 한자리 띄면 무슨 큰 성과를 올린 것처럼 우쭐대며 만물상이며 굿당에다 전화를 하여 모든 것을 지시해 버리는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한다. 굿을 맡았으면 굿상에 차릴 제물을 직접 시장에 가서 일일이 살피고 확인하여 구입하고, 만물상에 직접 가서 조상복 등 제물을 영을 떠서 구입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전부 전화 한통으로 다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게 무슨 정성인가?

참전계경 제 1조가 정성이고, 2조가 경신이며, 3조가 존봉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를 이야기 한 말들이다. 여기에 보면 한결같은 지극한 마음으로 신을 모시고 곤경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무교인은 지금 어떠한가? 굿을 띌 때는 지극정성이지만 굿을 준비할 때는 정성 드리는 사제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한 결과 전화 한통으로 이루어지는 굿당 문화가 굿상차림 등을 자기들이 일하기 편리 한대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또 굿당에서 굿을 하다보면 어떤 굿이든 뒷전 상을 함께 차려 놓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굿이 끝나야 뒷전 상을 차려서 마지막 뒷전풀이를 하였건만, 지금은 바깥에 뒷전 상을 함께 차려 놓고 굿을 하고 있으니 어디서 나온 법인지 묻고 싶다.

예전엔 굿상을 차리면서 바깥에 따로 차리는 상은 뒷전 상이 아니라 서낭상이다. 이 서낭상을 중시하는 무교인들은 신령님 상이나 다름없이 잘 차린다.

옛날 만신들은 서낭을 중시하였다. 그러기에 굿을 할 때 마다 서낭상을 따로 보는 것이다. 서낭이 무엇인가 손님이 들고 나게 하는 곳이며, 모든 새 신령님들이 무교인 몸에 들어오시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곳이기 때문에 무교인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굿상과 함께 뒷전 상을 함께 봐 두면 잡귀 잡신들이 몰려들어 신령님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무교인이 영험한 공수를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또 잡귀 잡신들이 무교인의 영을 흐리게 만들어 그 집 소원을 이루는데도 많은 방해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굿당은 무교인들에 의하여 살아가는 곳이다. 그러기에 굿당에 가면 무교인은 고객으로 무슨 일이든 주관하여 원하는 대로 하여 달라고 할 수 있다. 굿당에 일하는 무지랭이들이 하는 대로 맡겨두지 말고 당당하게 우리의 요구를 이야기해야 한다. 전물상은 보기 좋은 것 보다 우선 정성스럽게 둥근 접시나 제기에 무교인들이 직접 쌓는 것이 굿을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지극정성의 첫 걸음이며 정성스러운 마음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또 굿상을 차리면서 신어머니와 신딸이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인간의 정도 쌓고 가르침의 시간도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굿을 할 때 과일 쌓는 일을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았다. 부정을 타지 않은 깨끗하고 정성스러움이 가득한 무교인만 제물을 만졌지 일반인들에게는 맡기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무교인은 손도 까딱하지 않고 오직 굿당에서 소위 마당쇠라고 부르는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물을 진설하고 있으니 신령님들이 괘씸한 마음에 굿덕을 내려주시겠는가?

무교의 주인은 무교인이다. 그러기에 무교에 관련된 모든 문화는 우리 무교인들이 주관하여 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무교인이 편리함과 정성에 대한 개념의 무지, 그리고 서낭과 뒷전을 구별하지 않는 무관심 등으로 인하여 굿당의 편리함에 의하여 끌려가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굿당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편리함이 아니라 우리의 임무인 정성이 부족한 것이며, 우리만 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굿을 띌 때의 심정을 돌이켜 보면 신령님께 바치는 제물을 그렇게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