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황과 여영
아황과 여영은 최초의 지신
풍요와 생산을 의미하는 신
우리 무가에 아황임금 만세라는 구절이 있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여영이라는 이름이 유독 경기도 오산의 칠성거리 무가에서 아황과 여영이 나온다. 우리 무당들은 아황과 여영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아황 임금 만세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아황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으나 전부 지어낸 이야기들이다.
아황은 BC 2600여년의 제곡고신이라는 사람의 딸이고 여영은 요 임금 딸이라 한다. 아황과 여영은 순임금과 순임금의 사촌인 오회(吳回) 두 사람을 동시에 남편으로 섬긴 공동의 부인이다. 즉 2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가 공동으로 부부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상고시대에서는 모계사회 중심으로 흔히 나타나는 경우라 하며, 자식을 낳아도 누구의 자식이라고 하지를 않고
<금문출처:우리 역사와 천문/노중평>
성씨도 따르지 않으며 신비스러운 상징물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한다. 순임금의 뒤를 이은 우임금은 반란을 일으켜 순임금을 쫓아내고 임금 자리에 올랐다고 금문에서는 밝히고 있다.
순임금은 변방인 제후국을 순행하다 일어난 우(禹)임금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왕고모들에 의하여 계림의 북쪽 산속까지 쫓겨나 죽었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알 수 없다. 계림에는 너무나 계곡이 많아 어디서 죽었는지 알 수가 없어 시신을 찾지를 못하여 가짜 능을 만들었는데 그 능을 영릉(零陵)이라고 하였다. 후에 순임금의 시신이 계림의 북쪽 구의산(九籎山)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순 임금의 묘를 영릉이라고 한 것도 그 속에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순임금의 사촌이자 동서인 오회는 행방불명되었다.
아황과 여영은 순 임금을 찾아 호남성까지 내려 왔다 순임금의 죽음 소식을 듣고 동정호에 있는 완강과 상가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완강에는 아황이 빠져 죽고 상강에는 여영이 빠져 죽는다. 이 때 두 부인이 빠져 죽은 자리에는 세계적 희귀종으로 알려진 검은 점이 박힌 대나무 반죽(斑竹)이 자라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대나무에 박힌 점 등은 아황과 여영의 한이 맺힌 피눈물이라고 말한다.
중국에서는 아황은 정비이므로 상군(湘君) 여영은 차비이므로 상부인(湘夫人)으로 높여서 부른다. 동정호에는 섬이 하나 있는데 이 섬을 군산(君山)이라고 부른다.
동정호가 있는 곳이 악양인데 우리나라도 악양이라는 지명이 경남 하동에 있다. 경남의 악양도 동정호가 있으며 악양 앞을 흐르는 섬진강을 소상강이라고도 하는 것 등은 중국의 악양을 옮겨 놓은 듯하다.
경남 악양의 주변에 있는 산들의 이름을 보면 군산에서 마주 보이는 쪽에는 시루봉이 있고, 그 우측으로는 구재봉이 있고, 시루봉 좌측에는 성제봉이 있다.
시루봉의 시루는 나라의 덕을 의미하는 떡을 찌는 그릇이다. 곧 시루봉은 순임금과 오회의 큰 덕을 의미하는 산일 것이다. 또한 형제봉은 순임금과 오회 두 분의 형제를 나타내는 봉우리일 것이다.
악양이라는 지명은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였다. 왜 악양이라고 하였는가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나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자.
그런데 왜 아황이 우리의 무가 속에 나와서 이황 임금으로 불리고 있는가? 금문학회에 따르면 아황과 여영을 의미하는 문자가 알을 잉태하는 닭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곧 잉태는 생산을 의미하고, 생산의 근본은 땅(地)으로 아황 임금은 지신(地神)의 시조라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모든 경배의 대상은 하늘이므로 천제만 드렸지만 이때부터 지신에게도 제를 지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고로 우리 무가에 나오는 아황 임금은 아황이라는 순임금의 부인을 말하는 것으로 곧 여자는 생산을 의미하므로 땅의 신 지신(地神)이며 풍요를 의미하는 것이다.
마을 어귀에 무섭게 버티고 서 있는 장승을 보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는 글귀가 있다. 여기서도 하늘은 대장군인 남자 즉 건(乾:아버지)을 나타내고, 땅은 여장군인 곤(坤:어머니)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황은 지신의 모체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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