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속의 정신인 ‘생생지생’이다.

愚悟 2009. 5. 9. 10:28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무속의 정신인 ‘생생지생’이다.

 

 

지난 2일 촛불집회 1주년 행사를 마친 뒤 종로와 명동일대를 무법자처럼 누비던 시위대는

급기야 서울시의 축제인 ‘하이 서울 페스티벌’ 무대를 점령하여 축제를 무산시켰으며, 마스크를 썬 명동의 시위대 손에는 ‘보도블록’이 들려졌다.

 

항의하는 시민들에겐 폭언을, 고립된 전경에겐 집단 폭행이 자행된 이날 촛불집회 1주년은 촛불은 보이지 않고 수많은 깃발만 나부꼈다.

급기야 일본인 관광객이 시위대로 오인되어 경찰에게 폭행당해 갈비뼈가 금이 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렇게 대립과 갈등만 일삼는 한국의 보 〮혁 세력, 즉 좌파와 우파의 공통점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없어져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개혁세력이 전면에 내세우는 주장은 늘 자유와 민주, 평등과 인권, 그리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논리 등이다. 그러기에 자신들이 하는 일은 정의롭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선민사상이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의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수호와 발전을 위해서는 어떠한 불법행위를 하여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민주주의 또는 정의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들어 온 제도이다. 민주주의 이념 속에는 다분히 기독교의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선민사상에 빠져 신이 선택한 자신들만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며, 자신들이 하는 행동은 모든 것이 옳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자신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신만이 자신들을 심판할 수 있고 단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선민사상에 빠진 개혁세력과 전문 시위꾼들은 자신들이 생각과 행동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정의를 위해서라는 편견과 아집에 빠져 법을 무시하고, 국가 경제와 신인도 등 국민의 아우성과 원망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거리로 뛰쳐나와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한국의 개혁세력들은 자신들 만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자신들만이 가장 정의롭다는 선민사상에 젖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선민사상에 빠져 있기에 법을 무시한 그 어떤 행위를 하여도 잘못이 아니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상대방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상대방과 의사소통보다는 집단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집단 선민사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촛불집회 1주년은 시위는 절대로 국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없는 잘못된 행동이다. 촛불시위를 빙자한 전문시위꾼들의 장난으로 이들의 농간에 놀아난 개혁세력의 잘못된 시위다. 결코 진정한 개혁세력은 이러한 불법행동을 원치도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자유, 구리고 인권 수호를 핏대를 세워가며 외치는 그들은 촛불을 빙자하여 거리로 뛰쳐나와 ‘보도블록’을 손에 들고 던졌다. 구시대의 악습이라는 투석과 화공약품투척 같은 행위를 자행하며 민주주의를 역행하고 있다.

언제까지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개혁 세력 간의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누가 한국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 무엇이 한국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진 한국사회를 치유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이 시대 국민들 간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국의 보수와 개혁 세력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은 유아독존이나 선민사상이 아니라 바로 무교의 사상인 ‘生生之生과 接和群生’이다.

 

보수 세력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유아독존’이라는 독선적인 생각에 빠져 개혁세력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광을 가로 막는 불편한 존재라고 무시한다.

반면 개혁 세력은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라는 선민사상에 빠져 보수를 수구골통으로 매도하며 이 시대에 청산하여야 할 집단이라고 보고 있다.

다분히 이분법적인 이 논리는 바로 기독교의 정신이며, 중국의 음양사상이다. 즉, 아군 아니면 적군이라는 식의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

 

표면상으론 사랑과 진리, 그리고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고 있는 기독교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종교다. 타 종교를 배척하고 인정하지 않으므로 많은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현재 기독교로 인한 지구상의 갈등과 대립은 수없이 많은 인류를 죽음과 고통 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중국의 음양사상 역시 극단적인 흑백논리로 대립과 갈등만 초래하고 있다.

이들의 사상에는 조화라는 작용이 없다.

 

반목과 갈등을 해소할 기능인 조화가 없는 이분법적인 이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에 한국사회는 대립과 갈등의 연속으로 지금까지 나라가 시끄럽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민족종교인 무교의 사상에는 대립과 갈등을 해소할 조화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무교의 정신인 ‘生生之生’이다.

‘生生之生’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가치를 인정하는 정신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물이든, 즉 생명이 있던, 생명이 없던 그 자리에 존재하는 사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같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뜻이다. ‘接和群生’ 역시 더불어 잘살자는 뜻이다.

‘생생지생’에는 높고 낮음이 없으며 귀하고 천한 것이 없으며, 아름답고 추한 것이 없다. 모두가 다 똑같이 평등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를 가진다는 뜻이다.

 

이런 무교의 사상이야 말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는 미래의 종교가 아닌가 한다.

물론 이런 사상 때문에 봉건주의 사회에서 무교는 배척당하고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나라든 국민들의 정신적인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확립시킴과 동시에 통치의 기본으로 삼는 종교가 있다.

 

즉, 국민의 행동을 규제하고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는 종교가 무엇이든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국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가치관과 사상을 정립해줄 확실한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는 그들의 정신과 시각과 잣대로 한국사회를 생각하고 재단하고 바라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빙자한 각양각색의 주장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그들의 시각과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잣대로 재단하였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는 국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다시 갈등으로 번지게 된다.

 

이런 악순환 속에 빠져 들어 패닉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만 옳다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선민사상에 빠진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민족종교인 무교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무교를 바로 세워 무교의 정신인 ‘생생지생’ 으로 한국사회의 가치관과 사상을 정립한다면 지금보다 국민 계층 간의 대립과 갈등은 현저히 줄어 들 것이다.

 

이 ‘생생지생’을 실천하여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한다면 한국사회에서 각 계층 간의 갈등은 해소 될 것이며, 혼란 속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이 ‘생생지생’ 정신을 가르친다면 집단 따돌림으로 자살하는 학생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장차 한국사회에 갈등과 대립은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작금의 무교는 한국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무교의 사상과 철학마저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 한국사회의 불행한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교가 변하여야 한다.

무교가 변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무교의 사제인 무교인들이 변해야 한다.

현재 무교가 종교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무교가 수 천 년을 내려온 민족종교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무교인 스스로 변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교인의 역할과 사명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무교가 어떻게 하면 이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진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를 신중하게 생각하여 사회에 미치는 무교인들의 영향력을 넓혀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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