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별비는 뜯는 것이 아니라 바치는 것

愚悟 2010. 1. 5. 14:43

별비는 뜯는 것이 아니라 바치는 것

 

 

어제 모처의 굿당에 들렀다가 옆방에서 지노귀굿을 잠깐 볼 수 있었다.

서울굿으로 하는 지노귀였는데 돌아가신 부친과 각별한 정이 있었는지 망자의 딸인 듯 한 제가집 여인은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마침 필자가 들어갔을 때는 “사재삼성”을 놀 순서였다.

 

만신이 만수받이를 멋지고 하고 난 뒤 ‘혼잡기와 막기’도 코믹하고 실감나게 잘 끝을 내고 다음 순서인 ‘사재베들고 인정쓰기’를 하면서 만신은 연신 돈을 달라고 재촉한다.

조금 전 까지 슬픈 얼굴로 눈물을 연실 훔쳐내던 제가집 사람들은 만신이 돈을 달라는 시늉과 재촉에 슬픔과 눈물은 어디 간곤 없고 두 눈이 커지면서 돈이 다 떨어지고 없다고 두 손을 연신 손서래 치며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앞전에 벌써 적지 않은 별비를 내어 놓은 듯 한 이 제가집은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내어 놓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었다.

세상에 모든 일에는 항상 예비비라는 항목이 있어 생각하지 못한 일에 대비하여 사용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우리들이 굿을 할 때도 굿 돈 이외로 필요한 예비비가 있는데 그것을 별비라고 한다.

어떤 무당들은 굿 돈 내에서 별비로 사용하라고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별비를 따로 준비하여 오라고 한다.

그러나 이 별비 때문에 굿을 하는 사람들이 기분 나쁠 때가 한두 번 아니라고 한다.

너무 과하게 별비를 뜯어내는 무당들 때문에 굿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퇴색하고 제가집들이 다시는 굿을 안 한다고 속상해 하는 것을 볼 때는 정말 무당들의 얼굴은 얼마나 두꺼울까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굿청에서 별비는 뜯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바치는 개념인 것을 언제부터 우리는 별비를 뜯는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무당들이 모시는 신령님들이 강도나 건달도 아니건만 불한당처럼 제가집의 돈을 억지로 달라고 해야만 굿판이 즐겁고 큰 무당이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별비는 예로부터 굿청에서 만신이 멋들어지게 소리와 춤사위를 보이면 제가집은 스스로 별비를 함지박이나 굿상에 올려두고 하였지, 부채나 오방기를 펼치면서 어거지로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별비를 뜯는다면 옛날 큰 무당이 굿을 갈 때 데리고 다니던 기생들에게 해당하는 소리였다.

 

큰 무당이 굿 한 거리를 멋지게 놀고 잠시 휴식을 취할 때 기생들이 소리를 하면서 술을 권한 뒤 부채를 펴 들고 남정네들에게 돈을 뜯어내었던 것이다.

이렇게 기생이 남정네들에게 돈을 뜯을 때는 그래도 온갖 교태를 부리며 즐거움을 주면서 돈을 요구하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당은 기생과 같이 아양과 교태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멋들어지게 소리를 할 줄 모르면서, 신령님을 핑계 삼아 협박과 공갈로 부채나 오방기를 펴 놓고 돈을 요구하니 신령님들 욕을 보여도 단단히 보이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만신이 기생도 아니고 신령님들이 강도나 불한당도 아닌데 신령님을 핑계 삼아 없는 돈 자꾸만 달라고 하는 무당은 아마 노숙자나 거지 신령을 모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의 도당굿을 가보면 마을 사람들이 굿판에는 참가하지 않고 자기들 끼리 모닥불 앞에서 모여 고기나 구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이 굿판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도당굿 무당들이 너무 과하게 돈을 요구하니 부담이 되어서 가지 않는다고 한다.

 

작년 도당굿을 할 때 별비로 쓴 돈도 빌려와서 아직도 다 갚지도 못하였는데 다시 도당굿이 돌아왔다고 또 돈을 빌려서 별비를 쓸 수가 없다고 한다.

이삼십만 원 정도면 부담이 가더라고 일 년에 한번이니 즐겁고 별비를 쓸 수 있지만 너무 과하여 노인들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의 도당굿을 보면 굿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노인들로 이루어져 있어 수익이 없는 노인들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무당들이 무리하게 별비를 뜯는 바람에 별비 무서워 굿을 못하겠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별비를 잘 뜯는 무당이 큰무당이고 굿 잘하는 무당이라는 웃지 못 할 속설이 있으니 무당들이 얼마나 별비에 집착하는 지 알 수 있다.

별비를 잘 뜯는 무당들은 대부분 ‘청배무당’들이다. 또 장안에서 굿 잘한다고 소문난 무당들이 별비 또한 지독하게 잘 뜯는다.

 

이렇게 별비 잘 뜯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큰 무당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무당들은 돈만 아는 집단으로 왜곡되고, 굿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굿을 할 때 적당한 별비는 굿의 진행을 돕는 윤활유 역할을 하며 굿의 원활한 진행을 도와주지만, 과도하게 요구하는 별비로 인하여 제가집의 기분이 상한다면 그 굿은 하나 마나 한 굿으로 굿 덕을 보기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제발 신령님을 모시는 무당으로서, 민족종교의 사제로서 체통과 품위를 유지하였으면 한다.

신령님들이 원하지도 않는 돈 몇 푼 때문에 굿 돈을 받았으면 되었지 쓸데없이 별비를 과하게 뜯어 돈만 아는 무당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청배 온 만신들이 별비를 과하게 뜯으면 그것을 제지할 책임은 당주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제발 별비는 뜯는 것이 아니라 바치는 것이라는 의미를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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