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가문의 영광

愚悟 2010. 1. 13. 21:05

가문의 영광

 

 

무당이 되면 집안의 수치라고 한다.

예전 노만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무당이 되고 난 뒤 성씨까지 바꾸었다고 한다.

그만큼 무당이 되면 집안의 수치며 가문의 위기였다.

우리 무교는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한 조선시대에 와서 민족 종교인 무교를 박해하고 무당을 천시하던 못된 풍습이 일제강점기와 해방된 조국에서 미신으로 취급 받으면서 무당이 되면 가문의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해방이 된 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기독교가 득세를 하니 이번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우리보고 귀신이라고 멸시하고 배척하니 무교는 어느 시대, 어떤 세월 속에서도 폄하되고 무시 받는 민족 종교가 되어 버렸다.

무교를 폄하한다는 것은 무교의 사제인 무당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무당은 대한민국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으로서의 평등권과 종교의 자유에도 많은 침해를 받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지금은 무당 집이나 철학관을 찾아 점을 보는 행위는 당연한 것으로 젊은이들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영험한 무당은 유명한 인기스타와 마찬가지로 선망의 대상이면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 중에 들기도 한다.

 

수 천 년을 내려온 민족종교인 무교가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한 시대를 만나면서 왜곡되고 폄하되어 미신이 되어버린 세월 속에서도 무당들은 풀뿌리처럼 질긴 목숨을 연명하면 무교을 지켜왔다.

그 결과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무척 좋아진 무교에 대한 환경과 무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좋아진 환경 속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들어가면서 무당들이 하는 행위는 아직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무당은 하늘에서 점지한 사람이라고 한다.

무당은 다른 사제들과 달라서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하기 싫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한번 하늘의 천명을 받으면 죽지 않으면 해야 한다.

 

그러나 삼신께서 노망이 드셨는지 지금까지 무당들이 하는 언행을 보면 제 정신으로 점지하신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창조주이신 삼신께서 무당을 점지하셨는데, 무교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무당이 무당을 속이고, 속은 무당은 다시 사람들을 속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무교의 발전은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며 무당이 되면 집안의 수치나 위기가 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무당이 되면 가문의 죄인이 되어 숨기고 살아야 하나?

언제까지 무당의 자손이라고 놀림을 받을까봐 쉬쉬하면 숨겨야 하나?

언제까지 무당이란 것을 속이고 자식들의 혼사를 치러야 하나?

 

어느 노 만신은 손자들이 할머니가 무당이라는 것이 소문나는 것이 싫다고 하여 집을 따로 얻어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 마저 자신이 무당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하여 밤 12시가 넘어야 굿 짐을 옮기곤 한다. 그리고 장구는 장구집이 있어 보이지 않지만 장구라는 것이 표시가 난다고 보자기에 다시 꽁꽁 묶어 다시 싸는 것을 보니 할머니가 번 돈으로 공부하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하는 그 손자들이 가까이 있으면 따귀라고 때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런 슬픈 이야기 역시 무당들이 저질로 논 현상들이라 누구를 탓할 것인가?

며칠 전 내림굿 현장에서 신내림굿을 받는 신 애기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무당이 되면 가문의 수치나 위기가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 되게 하라고, 가문의 영광이 되느냐, 가문의 수치가 되느냐는 모든 것이 본인에게 달렸으니 무당의 본분을 깨우치고 무당으로서 삶을 투명하게 하여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될 것을 당부하였다.

 

부디 우리 모두 무당은 가문의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 될 수 있도록 무당의 본분을 망각하지 말고 깨우쳐 실천해 나갔으면 한다.

무당은 절대 수치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일깨워 주도록 우리 모두 각성하여 노력할 때 무교는 우리 민족의 종교로서 이 땅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