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무속관련 프로그램들의 운명

愚悟 2009. 12. 11. 00:49

 

 

요즘 케이블 방송의 무속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은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자 너도 나도 무속관련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방송국은 달라도 프로그램 내용은 하나같이 무속의 신비주의와 빙의 사례의 퇴치를 주제로 한 방송으로 귀신들림에만 초점을 맞추어 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프로그램에서 퇴마사들의 행태는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귀신을 혼자만 보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 하여도 누구하나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상황들을 연출하고 있으니 황당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퇴마사들의 빙의치료 의식을 그렇게 하여도 빙의가 치료되는지 묻고 쉽다.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방송국 PD 또는 작가들, 그리고 자칭 퇴마사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빙의가 치료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라고. 다만 방송을 위하여, 각본에 짜여진 데로 연출할 뿐이라고 말이다.

일전에도 필자는 칼럼에서 몇 번 이야기 하였지만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는 퇴마사라는 단어가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는 퇴마사라는 말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수 천 년 우리 민족의 삶과 생활의 지혜를 제공하면서 민중의 가슴 속으로 면면히 내려온 무교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무교의 사제인 무당이 있었기에 퇴마사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퇴마사는 단순히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설령 퇴마사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억울하고 한이 많은 귀신을 무자비하게 쫓아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퇴마사의 힘이 밀려 억지로 쫓겨 나간 귀신은 또 다른 사람에게 붙어 자신의 맺힌 한을 풀어달라고 괴롭히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무속은 이런 퇴마사와 달리 아무리 귀신이라고 하여도 그냥 마구잡이로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 귀신이 그 사람을 괴롭히는 사연을 들어보고 구신의 맺힌 한과 억울함을 풀어주면서 더 이상 사람에게 붙어 괴롭히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교의 작용을 이해하지 못한 일부 방송국에서 무교를 흥미위주로 귀신을 다루는 집단으로만 취급하여 프로그램을 편성 제작하다보니 급기야 기독교에서 들고 일어났다.

귀신이나 무속관련 프로그램은 인기가 없으면 기독교에서도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인기가 있다고 보면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방송모니터 보고서들을 종합하여 조직적으로 방송 중지를 위하여 움직인다.

 

어느 신문사 기자라는 분이 전화가 왔다.

방송위원회에서 케이블 무속관련 프로그램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심의에 들어갔다고 하면서 이런 현상들이 기독교의 조직적인 압력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당연히 기독교의 조직적인 압력이다.

 

솔직히 케이블 방송의 무속 프로그램의 내용과 수준을 보면 당연히 중지하여도 좋을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귀신만 들먹이며 미신을 조장하고 그곳에 나오는 퇴마사나 무당들을 스타로 만들어 개인의 홍보장으로 전락한 듯 한 프로그램들은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좀 더 진솔하게 무속의 속을 들여다보고 무속인들의 애환을 담아내어 온 국민들이 무속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

 

또한 무속인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알리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무속을 통하여 잃어버린 우리 상고사를 재조명하고 무속이 가지고 있는 민족의 정체성 등을 알리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한다.

이런 프로그램과 동시에 여러 가지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제작 방송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귀신에 너무 집착한 방송들은 스스로 기독교의 반격을 불러들여, 방송위원회에서 무속관련 프로그램을 중지시키기 위하여 심의에 들어갔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방송에 관한 기독교의 조직적인 압력은 지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이 진행되어 왔다.

어느 특정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면 그 방송을 모니터링 하여 그 방송이 기독교의 어떤 교리에 위배되며, 국민들에게 어떻게 우상 숭배를 부추기며 미신을 조장하고 있는지 보고서를 작성하여 그 보고서들을 모아서 조직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국교는 법에 명시 되어 있지 않지만 바로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각 정부 기관 곳곳에 기독교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이 현실은 기독교 교계에서 모니터링 한 방송에 대한 제재는 식은 죽 먹기 보다 더 쉬운 일이다.

 

10여 년 전 모 공중파 방송국에서 시청자들이 경험한 귀신이야기들을 다큐멘터리형식으로 제작한 프로그램 <이야기 속으로>가 인기리에 방영되었지만, 곧 방송이 중단되었다.

기독교 세력들의 압력에 의하여 프로그램이 중지 되었다는 것이 방송가에 소문으로 돌았다.

방송 PD들은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목숨을 건다.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 좋은 반응을 얻어 인기를 얻으면 제작자는 정말 보람을 느끼고 또 회사에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는 계기도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인기리에 방영되던 프로그램이 특정종교의 압력으로 중단된다면 이 나라는 과연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지 묻고 쉽다.

가득이나 살기 힘든 세상, 서민들이 조금이나마 위로 받고 암울한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을 특정 종교의 교리를 내세워 박탈하지 않았으면 한다.

 

프로그램의 제작 중지를 시키기보다 프로그램의 제작 방향을 바꾸도록 유도하여 계속 무속관련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합당한 일이다.

전 국민의 80%이상이 점을 본 경험이 있다는 통계 조사에서 보듯이 이제 점을 본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정부분 우리 문화로 정착된 무속 행위에 대하여 국민들이 좀 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송이 갖는 사명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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