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한 망자를 위한 이미자 선생의 오구굿이 있었다.
오구굿을 들어가기 전에 먼저 사망한 장소에 가서 망자의 넋을 건져오는 의식이 있었다.
간단한 제물과 망자의 넋을 건져 올릴 대나무, 그리고 망자의 넋을 상징하는 한지로 만든 사람 모습의 형상과 심자매 암컷 한 마리를 준비하고 사망장소로 갔다.
사망장소는 새로 난 길 사거리로 그렇게 많은 차는 다니지 않지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곳이라 사망사고가 많은 곳이라 하였다.
먼저 사망 장소에 음식을 차려 놓고 부산지방의 특성에 맞게 스님이 경을 읊었다.
이어서 이미자 만신이 한지로 만든 사람 모양들을 여기 저기 몇 군데 놓아 두었다.
그리고는 스님의 경문이 끝이 나자 이미자 만신은 주문을 외우면서 망자의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망자의 이름을 부르며 여기 있지 말고 함께 가자고 하면서 준비해 간 대나무를 가지고 사람 모습으로 오려 둔 한지를 대나무에 올리려고 하였다.
세 군데를 실시 하였으나 좀처럼 사람모습을 한 한지는 대나무에 올려붙지 않았다.
그러자 이미자 만신은 교툥사고가 난 사거리 한가운데로 달려 나갔다.
자동차들이 달리는 사거리를 주저없이 달려 나가는 바람에 십자매를 든 사람을 비롯하여 스님 등이 주저하고 있는 사이 이미자 만신은 사람모양으로 오린 한지를 사거리에 놓고 대나무에 따라 붙기를 축원하자 신기하게도 대나무에 금방 달라 붙었다.
대나무에 한지가 달라 붙자 미리 준비해간 주발에 망자를 상징하는 위패와 대나무에 달라 붙어 올라 온 망자의 넋을 집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주발 속에는 약간의 쌀이 담겨 있었다.
이어서 십자매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이렇게 함으로써 넋건지기는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이때 십자매는 망자가 여자이므로 암컷을 구입하였으며 망자를 상징하는 이름과 위패를 작은 종이에 적어 십자매의 오른발에 묶어 날려 보냈다.
망자가 남자라면 숫컷을 구입하여 왼쪽발에 묶어 날려보낸다고 한다.
이어서 망자의 넋을 모시고 굿당으로 돌아와서 오구굿이 시작되었다.
먼저 오구를 만든다.
씻김굿과 같이 돗자리에 망자를 나타내는 망자가 평소에 있던 속옷부터 자례로 치마 저고리까지 준비한다. 그리고 망자가 길을 떠나면서 먹을 양식인 쌀 7봉지, 반찬격인 소금 7봉지를 담아 망자 곁에 넣어 둔다.
그리고 고깔 12개를 접어 망자의 노자돈을 꼿아 넣고는 자리를 말아 일곱 매듭으로 묶는다.
이것으로 오구굿의 준비는 끝니 나고 본격적으로 오구굿이 시작되었다.
오구굿의 절정은 이미자 만신이 망자를 실어 못다한 말을 넋두리로 늘어 놓을 때 였다.
구설픈 목청으로 망자의 한을 풀어 놓을 때는 굿판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망자의 친정어머니, 형제자매들 그리고 시어머니 등 모두 하나같이 통곡을 하며 이미자 만신 몸에 실린 망자를 붙들고 억을함을 호소하였다.
31살의 젊은 나이에 졸지에 타인에 의하여 저 세상으로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분할 것인가?
이미자 만신을 비롯하여 어머니 몸에 실린 망자가 한 첫말은 똑같이 억울하고 분하여 못가겠다는 말이었다.
특히 이미자 만신의 툭 틔인 목청에서 흘러나오는 망자의 넋두리는 굿판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숙연하게 하기엔 충분하였다.
필자가 강의차 부산을 갔다 굿을 참관하게 되어 동영상을 찍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멋진 목청으로 흘러나오는 구슬픈 망자의 넋두리를 직접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면서 굿이 끝나지 않았지만 일정상 새벽 2시에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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