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말명거리
황해도 굿에서만 있는 유일한 굿거리인 도산말명거리는 그 명칭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황해도 만신들을 비롯한 많은 무속학자들이 도산말명거리에 대한 의미와 근원을 모르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도산塗山은 지금 중국 안휘성 회원현懷遠縣을 흐르는 회하淮河의 동쪽 강변에 있는 당도산當塗山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산塗山의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산塗山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한단고기> <태백일사/삼환관경본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순임금 시절 9년 홍수를 당하여 그 피해가 만백성에 미치니 단군왕검은 순임금과 약속하여 도산에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순임금이 파견한 사공司空 우禹(하우씨-훗날 우임금) 만나게 하여 우리의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법을 가르치게 하여 마침내 홍수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천부왕인天符王印을 전해 주어 모든 액을 막을 수 있게 하였다. 』
또 부루 태자가 도산에 이르러 취한 행동과 말을 기록하였다.
『태자는 도산塗山에 이르러 일들을 주관하였다. 곧 회합하여 번한을 통하여 우사공에 고하여 가로대, “나는 북극 수정水精의 아들이니라, 그대의 왕이 나에게 청하기를 물과 땅을 다스려서 백성들을 도와 이를 구하려 한다 했는데 삼신상제三神上帝는 내가 가서 돕는 것을 기꺼워하시므로 내가 오게 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 『부루 태자는 구려九黎를 도산에 모으고 우나라 순임금에게 명하여 우공의 사례를 보고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을 보면 도산塗山은 단순히 흙으로 쌓아 올린 산이 아니라 그 당시 고조선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들이 모여서 회합하는 장소였던 것이 틀림없다. 즉, 그 당시 지금의 UN과 같은 기능을 하는 장소가 바로 도산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말명은 대신이라고 부르며, 무교에서는 말명대신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명은 만명 滿明의 변음으로 생각한다. 즉, 만滿은 가득 찼다는 뜻이다. 명明은 밝다는 뜻으로 바로 신명神明을 이야기 한다. 이 말을 합치면 밝은 신명으로 가득 찼다는 뜻이 된다.
우리 무당들이 밝은 신명으로 가득 찼을 때가 바로 무꾸리나 굿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말명, 즉 만명은 바로 도산에서 삼신상제께 제사를 지낼 때 그 제사를 주제하는 무당을 만명滿明이라고 불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한양굿에서 사용하는 말명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한양굿의 말명末命은 목숨이 끝났다는 의미로 죽은 망자를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도산말명塗山滿明거리는 회합을 하기 전에 도산에 마련된 소도蘇塗 즉, 제사 터에서 단군조선의 주최로 삼신상제께 제사를 드린 후, 회합의 모습이나 결정 사항을 굿거리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도산말명거리에서는 많은 재담과 타령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도산말명거리를 도산할머니라고도 부르는데, 이 말은 도산을 관장하고 있는 무당이라는 뜻이다.
이 도산할머니는 서방이 아흔아홉이라고 한다.
보통 일반인들은 서방이 한 명이면 족하지만 도산할머니는 아흔아홉 이어야 한다.
아흔 아홉 서방이라는 뜻은 바로 도산회의에 모인 단군조선을 모시는 제후국의 대표자를 상징하는 수를 나타내는 뜻이 아닐까 한다. 그 당시 회의는 화백회의로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였을 것이며, 만장일치는 완성을 의미하므로 숫자 99로 표현할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흔 아홉이란 숫자는 천부경 사유체계에서 비롯된 최고의 완성수로, 아흔아홉은 백百을 의미하는 숫자다. 백百에서 一을 빼면 희다, 또는 우두머리, 최고라는 뜻을 가진 백白이 되므로 최고의 숫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결과 민족의 최고 경전인 천부경을 아홉의 배수인 81자로 만들었으며 이것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이 아홉이란 숫자를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동이東夷를 구이九夷 또는 구려九黎라고 하는 것도 바로 아홉이란 수를 완성수로 귀중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부경이 그 당시 최고의 경전으로 모든 제사나 회의에 사용하는 필수 경전이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이렇듯 도산말명거리에 나오는 아흔아홉이라는 숫자는 바로 최고의 완성수로 바로 천부경을 이야기 하는 숫자이면서 도산회의에 참석한 제후국의 대표자를 상징하는 수라고 할 수 있다. 또 도산회의는 만장일치의 화백제도였기에 의결 결과가 완전하다는 뜻으로 최고의 완성 수 인 아흔 아홉을 사용하였다고 생각한다.
항해도 무당들이 사용하는 대신방울 역시 아흔아홉가 달렸다. 이를 ‘아흔아홉상쇠방울’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지금 굿거리에서 도산말명거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역사성은 축소 왜곡되었지만 이 거리가 도산말명거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한 마음이다.
도산말명거리는 방아타령을 비롯한 많은 재담으로 사람들의 배꼽을 쥐게 하는 굿거리로 우리 민속의 원형을 보여주는 거리다.
방아타령은 방아를 찧으면서 말명신이 명과 복을 찧어서 인간에게 내려주는 뜻이 담겨 있다. 즉, 말명대신에게 나쁜 액을 방아 찧게 하여 그 액을 명과 복으로 바꾸어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는 거리이다.
이것은 부루태자가 우사공에게 홍수를 막는 오행치수법과 모든 액을 막을 수 있는 천부왕인天符王印을 전해주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도산말명거리의 상차림은 말명 동고리에 삼색 헝겊과 굿상에 차렸던 음식을 조금씩 담아 놓고, 다른 동고리에 방아 찧을 쌀 반 말 정도 담아 둔다. 무복은 홍치마에 남쾌자, 연두색에 삼 ․ 사동 단 동달이 옷을 입고 머리에는 검은 수건을 쓰고 방울을 들고 잦은 만세받이로 시작한다.
『해를 받던 도산 / 달을 받던 도산 / 구름을 타던 도산 / 바람을 타던 도산 / 외기던 도산 / 불리던 도산 / 부귀할마이 / 이씨 도산할마이 / 천하 말명 / 지하말명 / 옥황말명 / 신선 말명 / 터주 말명 / 지신 말명 / 산천 말명 / 놀러와요 / 지신집의 큰애기 / 살량집의 며느리 / 봉산네 오라바이 / 방아 찌러 와요』
이 잦은 만세받이 내용만 보아도 만萬 신명神明을 모두 모셔다가 인간에게 복福과 명命을 주러 가자는 뜻이니, 도산말명은 분명 도산의 소도蘇塗에서 삼신상제께 제사를 드릴 때 주관하던 무당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