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의 뿌리는 상고시대 시작된 신교에서 비롯되었다.
신교는 삼신을 생명을 낳는 하나님으로, 칠성은 생명을 기르는 하나님으로 모시는 우리 민족의 원초적인 신관이다.
그런 까닭에 숫자 3은 삼신이 새 생명을 창조하기에 가장 안정된 숫자라고 하며, 행운의 숫자라는 7은 북두칠성이 천지일월과 음양오행을 다스리며 인간의 무병장수와 길흉화복 등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또 북두칠성의 선기옥형은 바로 삼신이 계시는 곳으로 북두칠성이 우주의 중심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삼신과 칠성을 수를 더하면 모든 우주를 포용하고 새롭게 창조를 할 수 있는 열 10이라는 완성된 숫자가 되며, 이것을 우리는 삼신상제 또는 하나님이라 불렀다.
우리 민족사에 처음으로 한국을 여신 한인천제를 비롯하여 한웅천왕, 단군왕검이 천제를 지내는 대상도 삼신과 칠성으로 바로 삼신상제 하나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삼신상제께 제를 올리고 가르침을 받아 깨우치고 널리 실천하는 것이 바로 신교 또는 신선도로 불렸다고 볼 수 있다.
신교는 한민족 9천년 역사를 잇는 민족의 혼으로 삼신과 칠성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전달하는 집단이 낭가郎家라고 한다.
이렇게 삼신상제의 가르침을 깨우쳐 널리 전파하는 집단을 한웅천왕의 배달시대엔 ‘삼랑’이라 불렀으며, 단군조선은 국자랑, 북부여는 천왕랑天王郞, 고구려는 조의선인皂依仙人, 백제는 무절武節, 신랑는 화랑花郞,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선랑仙郞·국선國仙 등으로 계승되어 조선에서는 선비정신으로 이어져 왔다.
이 낭가들이 실천하는 것이 바로 홍익인간, 재세이화, 성통광명으로 생생지생生生之生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그 맥이 끊기어 우리 민족의 신교는 사라져 가고 있다.
‘삼랑’에서 시작된 삼신칠성의 가르침을 깨우쳐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그 정신을 전파하는 역할을 지금부터 우리 무교인이 해야 한다.
‘무巫’자가 가지는 삼신일체의 의미를 다시 깨우쳐 민족의 혼과 정신을 이어가는 신교를 되살리는 임무가 바로 무교인에게 있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 무교인들이 바로 ‘삼랑’의 후계자라고 하면 그 누구도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신교의 계율에는 삼륜三輪 · 오륜五輪 · 오계五戒 · 팔조八條 · 구서九誓 · 參佺戒經 등이 있다.
삼륜은 조선국의 제3세 가륵단군 때와 제11세 도해단군 때 삼륜구서의 훈을 강설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삼륜은 첫째는 애륜愛倫이며, 둘째는 예륜禮倫이며, 셋째는 도륜道倫이라 하였다.
애륜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며, 예륜은 사람이 정한 것이며, 도륜은 하늘과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해진 바라고 한다.
오계는 세속오계를 이야기 하며, 오륜도 이미 삼강오륜을 통하여 알고 있다.
팔조 역시 단군조선의 팔조로 나타나며, 구서는 효孝 · 우友 · 신信 · 충忠 · 손遜 · 지知 · 용勇 · 겸兼 ·의義를 이야기 한다.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과 경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무교인들은 ‘삼랑’에서 시작된 그 임무와 역할을 알지 못하고 오직 굿하고 돈을 버는 데만 열중하고 있으니 무교가 신교의 맥을 이었다고 말 할 수가 없다.
무교가 민족종교로 인정받고 타 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무교인 스스로 임무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신교가 바로 삼신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도道 · 불佛 · 유儒가 탄생하였으며 이들을 합한 것이 신선도, 즉 신교라고 최치원의 낙랑비서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신교의 맥을 이어받은 무교 역시 유·불·도의 다양한 신들을 모시고 있다.
즉 가지와 잎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양 하는 모습은 뿌리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 눈에 보이는 신상에 억매여 삼신칠성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니 무지한 집단이라 손가락 받지 않을 수 없다.
『죽서기년竹書起年』에 봉황은 생충을 먹지 아니하고 생초를 딛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아니하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화랑과 같이 명산 계곡을 찾아다니며 도의를 닦고 깨우침을 얻으려고 늘 노력하는 무교인들이 봉황과 같은 자존심으로, 부디 2014년 갑오년에는 삼신칠성의 가르침인 신교의 계율을 깨우치고 지키며 그 정신을 널리 전파하는 이 시대의 ‘삼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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