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이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근데 무교인들이 무슨 짝사랑을 한다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여기서 짝사랑은 무교인들이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 대한 생각으로 많은 무교인들은 불교는 우리와 가깝고 우리 편이라는 막연한 사랑과 믿음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불교가 펼친 무불습합巫佛習合이란 오랜 관행 때문에 생긴 함정이지 절대 불교는 무교의 편이 될 수 없으며 우리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대웅전 팔작지붕 밑에 그려진 삼신>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무교를 중심에서 밀어 내었다.
그러나 백성들이 여전히 믿고 따르는 신교, 즉 무교의 신과 의식을 받아들여 일반 백성들을 불교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무불습합이며, 무불습합은 불교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부득이 받아들인 편법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환웅천왕을 모시던 대웅전에서 몰아내고 그들의 부처를 모셔놓았고, 또 산신각 과 칠성각을 세워 불교와 관계없는 기복을 추구하고 있다.
또 인간의 깨달음을 목표를 하는 것과 달리 죽은 자를 위한 천도제와 죽은 조상을 위한 각종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신년이 들어서면 아는 소리(점)와 부적 등으로 무교의 영역을 침범하여 돈을 벌고 있지만 그들은 무소유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비로운 승려처럼 비춰지도록 탐욕은 부처 뒤에 숨기고 있다.
사실 불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위정전술이 뛰어나 절대 탐욕스러운 종교로 보이지 않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렇게 불교와 무교는 영역이 불분명하게 굴국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그러나 그 어떤 시절에도 불교는 ‘갑’이었고 무교는 ‘을’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밑바탕이 되어 무불습합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난 뒤 불교는 무교를 폄하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에 와서 승려들이 무교인들을 절에서 일하는 하찮은 하인쯤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자기를 따르는 무지한 중생으로 생각하고 대하는 듯 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승려들의 이런 태도는 무교인들의 잘못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늘 무교인들은 천지신명을 모신 신의 제자라고 한다. 또 늘 큰 신을 모셨다고 큰소리를 치고 자랑을 하면서 왜 승려를 만나면 기가 죽는가?
옛날 고승과 달리 공부도 하지 않고 탐욕에 찌든 승려들을 보고 무교인들은 기죽을 필요가 없다. 우리 무교인 뒤에는 든든한 신령님들이 계시지 않는가?
많은 승려들이 법문 등을 통하여 무교인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고 있다.
기독교에서 무교인을 귀신들린 집단이라고 하듯이 불교 역시 무교인을 업장이 많아 아수라에 걸린 미천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영향을 받아 일부 사찰에서 봉사하는 일명 보살들은 무교인 알기를 우습게 안다.
자기들이 무슨 큰 고승이나 된 것처럼 무교인을 손가락질 하면 흉을 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나무라기 전에 울화가 치민다.
그럼에도 많은 무교인들은 불교가 우리 편이라 생각하고 사찰에 갈 때마다 대웅전에 불전을 아낌없이 넣는다.
그리고 신당에 부처를 비롯한 각종 보살상을 세우 두고 목탁을 들고 불경을 외운다.
심지어 불상을 새로 모시면 큰 자랑거리처럼 소문을 낸다.
참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못난 종손들이 지손의 집에 가서 변형된 그들의 풍습을 보고 좋다고 흉내 내는 꼴이다.
원래 가지고 있었지만 잊어버리고, 무지하기 때문에 우리 것인데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기에 옷만 바꿔 입어도 새롭게 느끼고 좋아 보이는 것은 무교인들이 무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무교인들은 불교에 대한 짝사랑을 접을 때가 되었다.
절대 불교는 무교를 두둔하지 않는다.
지금 불교는 무교와 돈벌이에 한하여 경쟁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쪽지방 특히 경상도 지방에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왜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보다 불교를 155년 늦게 들어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샌 줄도 모른다고 한번 받아들인 불교는 무불습합으로 무교인들의 신당 한가운데 차지하고 있다.
대웅전에 환웅천왕을 밀어내고 부처를 모셨듯이 무교인의 신당에도 어느새 천지신명님을 밀어내고 불상이 한가운데를 차지한지 오래 되었다.
이런 현상들은 무교인들이 무지해서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민족의 경전인 『삼일신고』 제5장 인물 편을 보면 무교의 뿌리인 우리 민족의 신선도 사상이 삼신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선도는 도道 · 불佛 · 유儒 삼교일체의 삼신사상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신선도는 한웅천황에 의하여 확립되어 가르치면 전파되었다.
삼신은 천일 · 지일 · 인일을 의미하고, 조화와 교화 그리고 치화를 의미하며, 삼신은 곧 사람에게 삼진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선善 ·청淸 ·후厚라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이 본성은 <식息·감感·촉觸>과 <기氣·심心·신身>과 <명命·성性·정精>으로 지켜지고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
여기서 모든 느낌을 끊어 버리고(止感) 마음을 맑게 하여(明心) 본래의 성품을 깨달아(覺性) 성불을 추구하는 사상이 불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숨을 고르게 쉬고(調息), 원기를 길러(養氣), 불로장수(長命)하는 신선을 추구하는 사상이 도교가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모든 육체적 감각(관능적인 욕구)을 극복하여(禁觸) 행실을 닦고(修身) 정기(정력)를 성실하게 함으로써(精誠) 성인군자를 추구하는 사상이 유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삼신사상이란 뿌리에서 자란 가지와 나뭇잎이 무교인들이 그렇게 짝사랑하는 불교가 되었으며, 또 도교가 되고, 뿌리를 부정하며 무교를 박해한 유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교의 뿌리인 신선도는 환웅천왕에 의하여 확립하여 가르쳤으며, 삼신상제의 가르침을 깨우쳐 널리 전파하는 집단을 환웅천왕의 배달시대엔 ‘삼랑三郞’이라 불렀다.
그리고 단군조선은 국자랑國子郞, 북부여는 천왕랑天王郞, 고구려는 조의선인皂依仙人, 백제는 무절武節, 신랑는 화랑花郞,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선랑仙郞·국선國仙 등으로 계승되어 조선에서는 선비정신으로 이어져 왔다.
작금의 무교인은 이 ‘삼랑’에서 시작된 삼신칠성의 가르침을 깨우쳐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망각한 무교인들이 일방적인 불교 짝사랑은 이제는 접어야 한다. 무교는 다시 삼신칠성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교는 무교의 종교논리를 다시 세워 남의 경전이나 외우고, 타 종교의 논리를 인용하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고 우리의 논리와 경전으로 거듭나야 한다.
무교인들은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이 신교, 즉 무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불습합이란 오랜 잘못된 관습이 무교인들의 생각과 정신을 불교화 시켰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무교의 논리와 경전을 다시 찾아 무교가 인류시원의 삼신칠성사상과 그를 기초한 민족의 선도사상인 신선도의 정신을 계승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교가 혼자 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
타 종교의 경전과 논리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무교의 정신을 다시 찾아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짝사랑의 말로는 상처뿐이다.
지금까지 해 온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
무교인들이여, 이제 불교에 대한 짝사랑을 모두 그만두자.
그리고 2014 갑오년은 무교의 새로운 역사를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다시 써보자
'삼지창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詐道로 빠진 무당들 (0) | 2014.03.10 |
---|---|
무교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0) | 2014.02.11 |
인왕산 용궁의 수난 (0) | 2013.12.13 |
귀신을 방자하여 등치는 인간들 (0) | 2013.12.05 |
스스로가 주인인 무교인 모임을 준비하며 (0) | 2013.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