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의 유래와 풍속
정월 대보름이란 음력으로 정월 15일을 가리키는 말로써, 한자로는 상원上元, 원석元夕, 원소元宵, 원야元夜, 등절燈節이라고 한다.
상원은 7월 15일인 中元, 10월 15일인 下元과 함께 삼원절이라고 하였다.
태음력에서는 1년을 4계절로 나누고 계절마다 해당되는 3개월을 각각 첫 달은 맹월孟月 둘째 달은 중월仲月 셋째 달은 계월季月이라고 하였다.
율력서에 "정월은 천지인이 삼합하는 날로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하였으며, 또 천관天官이 복을 내려주는 날이라 하여 천신이나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렸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대보름을 중시하였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당나라 때 상원 날에 등을 밝혔다는 풍속에 따라 신라 백제 고구려를 비롯한 고려까지 상원 날에 왕실에서 등불을 밝히고 조상과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보름날 먹는 찰밥의 유래는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21대 비처<소지>마립간 때라고 한다.
소지마립간이 천천정天泉亭에 거동하였을 때 쥐가 까마귀 가는 곳을 쫓으라고 하는 말을 듣고 까마귀를 쫓아가다 한 노인이 연못에서 나와 글을 주는데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왕은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하여 열어보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용한 무당이 한 사람은 왕이요, 두 사람은 서민이라고 하여 글을 열어보니 “궁중으로 가서 거문고 갑을 쏘아라” 라고 적혀 있었다.
궁으로 돌아온 왕은 거문고 갑을 쏘니 비빈과 중이 간통하다가 모두 죽었다. 이때부터 상원날을 까마귀가 죽은 날(烏忌日)로 삼고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다. 이때부터 대보름날에 약밥을 만들어 먹는 풍속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보름날 풍속으로는 처용설화에서 비롯된 ‘제웅치기’라는 것을 하는데 집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머리에 동전을 넣고 14일 밤에 길에 버리면 일 년 동안 액을 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어부섬(魚鳧施)이라고 하여 바가지에다 식구수대로 밥 한 숱씩과 음식들을 담아 강물에 띄어 보내면 일 년의 나쁜 액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남한강 수계에서는 행하고 있다. 이 어부섬은 부산鳧山에서 비롯되었는데 부산은 복희의 능이 있는 곳이다.
또 여자 아이들은 나무로 작은 조롱이나 호로병박을 3개 만들어 각각 청, 홍, 황색을 칠하고 채색실로 끈을 만들어 차고 다니다가 밤에 몰래 길에 버리면 액을 면한다고 하였다.
또 일년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볏가리대 세우기’ ‘용알뜨기’ ‘그림자점’ ‘농사점’ ‘닭울음점’ ‘달부름’ ‘나무시집보내기’ 등이 있다.
<경도잡지>에 의하면 서울에서는 종각 네거리 흙을 퍼다가 부뚜막에 바르면 재물이 모인다고 하였으며, 부자집 헛간의 흙을 파다가 부엌에 바르면 재수가 좋다고 하였다.
대보름날 놀이로는 ‘달집태우기’ ‘고싸움’ ‘차전놀이’ ‘줄다리기’ ‘쇠머리대기’ ‘햇불싸움’ ‘다리밝기’ ‘지신밟기’ ‘놋다리밟기’ 등이 있다.
특히 정월대보름날은 ‘안택굿’을 많이 하였는데 터주신과 조왕 그리고 용왕과 조상신에 제사하는 것으로 일 년 동안 재앙, 질병, 화액禍厄을 쫓고 집안이 평안을 기원하였다.
그 외 정월 대보름날 풍속으로 ‘귀밝이술’ ‘부럼깨기’ ‘더위팔기’ ‘묵은 나물과 복쌈’ ‘백가반’ 등 많이 있다.
대보름날 금기하는 음식으로는 아침밥을 물에 말아 먹거나 바다의 생파래를 먹으면 자기 논이나 밭에 잡초가 무성해 진다고 금기시 하였다. 또 김치를 먹으면 물쐐기에 쏘이어 고름이 든다고 했으며, 찬물이나 눌은 밥, 고춧가루를 먹으면 벌이나 발레에게 쏘인다고 하여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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