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적이 가지는 의미
무당이 되고나면 누구나 일 년 내지 3년에 걸쳐 신령님을 대접하는 것이 진적이라고 한다.
특히 신애기들은 진적이라기 보다 솟을굿 개념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왜 진적을 드리는지 진적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고 무조건 신령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굿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거나, 또는 무교인 본인이 잘 풀리지 않으니까 신명 가리를 다시 잡는 의미로 진적을 드리는 예가 많이 있다.
진적은 진적과 진작 두 가지로 흔히 부른다.
진적은 한자로 진적進炙 또는 진적眞嫡으로 부르며 진작은 한자로 진작進爵과 진작進酌으로 나타낸다.
진적進炙이라고 하면 구운 고기 등 많은 제물을 차려서 마고삼신을 비롯한 성수님을 모신다는 의미와 성수님 앞으로 나아가 친히 마고삼신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의미라는 뜻이 있다.
또 다른 진적眞嫡은 적嫡자가 가지는 의미가 정실 또는 맏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마고삼신의 모시는 정실 부인 또는 맏아들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삼신을 비롯한 성수님을 모시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무녀는 신령님의 정실부인이라는 개념이며, 박수는 신령님의 맏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진적進嫡은 제사를 드릴 때 바닥에 까는 돗자리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하면 신령님께 제물을 바치고 거적을 깔고 고개 숙여 굻어 앉았다라는 의미가 된다.
즉 석고대죄를 하는 것처럼 지난온 세월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비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진작進爵이라고 하면 성수님을 모시거나, 마고삼신을 모실 작위를 받은 사람, 또 진작進酌이라 하면 무당이 술과 고기를 바치며 모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진적 또는 진작 어느 명칭으로 불러도 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신께 정성을 드리느냐에 따라 진적 또는 진작으로 부르면 되겠다.
이렇게 엄숙하고 신성한 진적이 요즘은 이상하게 변하였다.
진적이란 오늘이 있게 만들어 준 천지신명님에게 감사드림과 동시에 알게 모르게 잘못한 여러 가지를 진심으로 신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사제로서의 각오와 다짐을 다시 하여 현재 처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무당으로서의 행하여야 할 책무를 충실하였는지, 오늘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 1년 혹은 3년 동안 본인을 믿고 따라온 신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신령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적을 준비하는 무교인들의 마음가짐은 비장하기까지 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진적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진적을 통하여 한단계 성숙한 제자가 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또 무녀가 모신 신명들을 재차 확인하고 제대로 들어오지 못한 신령님들을 다시 잘 받아 모셔야겠다는 각오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진적은 일반 제가집 굿과 달라서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찮다.
무교인 자신이 모시는 신령님께 드리는 정성이므로 많은 제물을 차리고, 일반 굿에서는 잘하지 않는 굿거리도 꼼꼼히 찾아서 하기 때문에 하루에 끝내지 않고 황해도굿 같은 경우는 보통 3일 때론 5일씩 한다.
물론 한양굿은 하루에 끝을 내는 겨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무교인들이 참가하여야 하니 인건비 등으로 많은 금전이 들게 되는 것이다.
또 많은 신도들이 참여를 하기 때문에 공수를 주는 시간도 많고 또 신도들 중 무감을 서고 노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진적을 드리면 신도들이 십시일반 금전을 모아서 도와준다. 또 진적에 초대받은 무교인들도 형편에 맞게 조금씩 부주를 한다.
그러나 진적을 제대로 하면 이런 주위의 도움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떤 무교인은 진적을 자기 돈으로 하냐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금전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진적이 무슨 자신의 정성이 되겠는가?
진적할 때 부주하는 것은 많은 금전이 들어가니 주변에서 조금씩 도와주는 의미이지 그것으로 진적비용을 다 충당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진적을 드릴 때면 신도들에게 과도한 경비를 부담시키는 무교인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하여도 큰 부담은 삼가야 한다.
무교인이 모시는 신령님이 거지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아 정성을 드린다는 것은 결코 신령님들이 좋아하시지 않을 것이다.
진적에 드는 비용 중 가장 큰 부담이 바로 무당과 악사들의 인건비로 우리 모두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적에 참가하는 무당들은 평소 함께 굿을 하면서 친분을 깊은 무교인들이다.
그러면 평소에 함께 일하며 같이 벌어먹고 살았다면 진적 때만큼은 서로 품앗이로 몸으로 도와주면 어떨까 한다. 그냥 가기가 정말 신령님들이 섭섭하다면 전안에 올릴 쌀값 정도만 받아가도 진적을 드리는 무교인은 훨씬 부담이 줄여들 것이다.
또 악사들도 다른 굿은 몰라도 진적만큼은 함께 동참한다는 의미로 참가하면 어떨까 한다.
사실 악사들에게 나가는 경비도 수백 만원이 훨씬 넘어가니 진적을 하는 무교인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진적 굿판에 동참하는 무교인이나 악사들은 평소에 굿을 통하여 많은 금전을 벌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니 그동안 신령님 덕분으로 벌어 먹고 살았으니 신령님 대접할 땐 감사하다는 의미로 금전을 떠나서 함께 동참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신연록기>를 보면 조선시대에 무당들이 세금을 내지 못해 굿을 못하게 되니 악사들이 일을 할 때 마다 돈을 추렴하였다가 무당들의 세금을 대신 납부하였다는 기록이 있듯이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습이 전해졌으면 한다.
많은 무교인들이 일년벌어 진적한번 하고 나면 돈이 없다고 한다. 또 진적을 한다고 빚을 졌다는 무교인들이 많이 있다. 성수님들은 빚을 지고 진적을 드리는 것도, 무리하게 많은 돈을 들여서 제물을 차리는 것도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진적은 정성이 중요한 것이지 많은 제물을 차려야 잘되는 것은 아니다. 제물은 형편껏 차려야지 어느 신령님이 제자가 빚을 내어 제물 차리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특히 신선생들이 유념해야 할 것은 형편도 안되는데 진적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다.
일년동안 벌이준 돈으로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돈으로 진적을 하라고 하는지, 그것은 선생들의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진적은 3년 또는 5년에 한번 해도 아무상관이 없다. 내 형편껏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무당은 10년 넘게 진적한번 안해도 잘만 불리고 살고 있다.
진적이라고 하면 일당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교인과 악사들은 반성해야 한다.
베트남의 무당들은 1년에 한 번씩 진적을 드릴 때면 신도들에게 음식과 금전을 나누어 준다.
일 년 동안 신도들 덕분에 신령님 모시고 잘 지냈으니 이날만큼은 신도들에게 재수와 운을 나누어 줌과 동시에 금전도 함께 나누어 줌으로써 1년 동안 무당이 신령님들의 도움으로 더욱 더 잘된다는 의미로 그렇게 한다고 한다.
우리도 베트남의 무당처럼 진적만큼은 신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함께 나눈다는 개념으로 굿을 한다면 무교가 종교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며, 무교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달라질 것이다.
무당은 자신을 따르는 신도가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으며, 신도가 없는 무당은 무당이라고 할 수가 없다. 아니 무당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신도들 등꼴 뽑아 진적하려는 생각은 정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도 진적 좀 해 봤으면 좋겠다는 어느 무당의 푸념을 우리는 그냥 흘려들어서는 절대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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