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자에서 발견한 기독교의 민족사관
요즘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역사관을 가지고 모든 매스미디어와 수많은 논객들의 논평으로 연일 시끄럽더니, 이젠 종교 간의 분쟁 양상마저 보여주고 있어 우려스러운 면도 있지만, 무교巫敎의 입장을 대변하여 논평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 글을 쓴다.
작금의 사태는 마치 진보와 보수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처럼 보여 지지만, 작금의 문제는 진보 보수라는 진영 논리로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잘못된 역사교육에 대한 반성과 특정종교의 이념적인 편중과 잘못된 사관을 비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총리공관>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특정종교에 심취되어 있으면 지성인라고 해도 그들이 만든 사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세월호 침몰 후 구원파 신도들이 “가름 부은 자” 유병언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보호하려는 행태나, 문후보자의 발언에서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을 재단하고 주도하였다는 논리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일부 개신교들은 믿고 따르는 대상이 유병언인지 하나님인지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의 언행은 결코 다르지 않으며 이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은 분명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문후보자도 이럴 진데 일반 개신교 신도들의 상태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 같다
.
한국의 개신교들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대한민국은 기독교공화국이다.”로 바꾸고자 하는 속셈을 숨기지 않고 있다.
대통령을 무릎 꿇리고,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타 종교를 사탄의 집단으로 처단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며, 민족의 아픈 역사를 하나님이 시련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면, 이런 비참하고 힘든 고통을 준 하나님을 왜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일까?
일제강점기 시절 억울하게 끌려가 죽음을 당한 수많은 징용희생자와 위안부 할머니들, 그리고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전쟁 희생자들, 그리고 지금도 속을 태우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고통도 역시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니 언제쯤 우리 민족은 이런 비극에서 벗어나 행복한 국가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 헌법을 바꿔야 할까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를 말살해야 할까요?
제발 개신교 지도자들은 국가와 민족보다 종교가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887년 서울에 있던 5명의 선교사인 언드우드, 아펜젤러, 알렌, 스크랜튼, 헤론 등이 신의 명칭을 천주와 하나님을 두고 표결한 결과 천주를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어 바이블 번역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언드우드’는 하나님이란 용어대신 참신 ‘여화와’를 채택하여 사용하였다.
이렇게 하나님 이란 명칭이 개신교들의 신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지만 지금까지 널리 시용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포교활동을 원만히 하기 위한 명칭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언드우드(L.H Underwood)는 선교보고서에
“고구려 왕국에서는 하나님이라 불리는 유일한 신만이 섬겼다.”는 기록이 있으니 포교활동을 위하여 하나님이란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우리 민족은 하나님이란 용어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순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말로 하나님은 하느님, 한얼님, 한울님, 하누님 등으로 불린다. 부르는 말은 다르다하여도 그 뜻은 삼일신고의 일신一神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란 말을 가장 처음 한글로 표기한 사람은 조선시대 선조 때 시인 노계蘆溪 박인로(1561-1642)로 그의 노계가사 중에 “하나님”이란 단어가 나온다.
時時로 머리드러 北辰을 바라보고
모르 눈물을 天一方의 디이다
一生에 품은 (ㅼ)뜻을 비옵미다 하ᄂᆞ님아 ('나'는 아래 나로 되어있음)
개신교들은 자기들의 신 여화와를 우리 민족의 하나님으로 바꾸어 우리 민족을 속이고 지금까지 선교활동을 해왔다. 더 이상 개신교의 신인 여화와를 하나님으로 부르지 말고 그들의 명칭대로 여화와라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고 선민사상에 물들어 “믿은 천국 불신 지옥” 이란 미명 아래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는 행동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
또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총리가 된다면 나라의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 마다 하나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총리나 장관들을 지명할 때 특정종교에 너무 심취되어 있는 사람들은 피해야 한다.
종교의 경전은 사람들의 사고를 경전 안에 가두기 때문에, 창의적인 발상으로 국가를 발전시킬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종교의 교리에 맞게 국가를 이끌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타 종교들과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
또 일국의 총리나 장관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것만으로 지명해선 안된다.
총리나 장관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들과도 코드가 맞아야 한다.
즉, 대통령과 총리, 장관만 좋아서는 안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바로 무교의 정신으로 生生之生이라 한다.
상생相生과 달리 두 당사자 간의 합의가 제 삼자에게도 유익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무교의 정신이며, 대통령이 총리나 장관을 지명할 때 절대적으로 유의해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고 문후보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퇴를 하고, 진솔한 반성과 같은 민족으로서의 자각과 성찰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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