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이야기

칠성거리1

愚悟 2014. 11. 5. 11:11

칠성거리 -1


현재 황해도 굿거리 중에서 제일 큰 거리라고 하는 칠성거리는 칠성제석거리 혹은 제석거리로도 불린다.

여기서 제석은 생산의 신으로 현재 불교의 신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제석은 불교의 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조상 삼신할머니를 말한다.

천지인을 말하고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을 다른 말로 부른 것이다.

한국桓國5세 한인천제의 이름이 석제임釋堤壬 한인이 계시는 것을 보아도 이미 제석이라는 의미의 문자는 한국시대에 사용하였다고 봐야 한다.

또한 단군왕검이 석가모니보다 약 1900여 년 전 성인으로 제석으로도 불렸건만 언제부터인가 제석은 불교의 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칠성제석거리는 우리 민족의 원초적인 신이 북두칠성을 의인화하고 삼신할머니를 칠성님 부인으로 여기면서 시작된 굿거리가 아닌가 한다.

칠성님 부인을 매화부인이라고 무가사설 등에 나타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칠성은 북두칠성을 제석은 삼신할머니 매화부인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삼신은 마고와 궁희 소희를 나타내는 신격이지만, 또 우리 조상인 한인, 한웅, 단군왕검을 칠성과 동일시하는 관점에서 삼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칠성제석거리는 아마 단군시절에 팔가八加 중 학가鶴加들이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 이유는 칠성거리의 춤사위에서 학이 날개 짓을 하면서 나는 형상을 나타내는 듯 한 춤사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칠성제석거리에서 불교의 대사들이 등장하는 등 불교의 냄새가 나는 것은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국교로 막강한 위세를 떨칠 때 시류에 밝은 어떤 무당이 승려의 영향을 받아 슬쩍 같다 붙인 것이 계속 이어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한다.

불교의 신관은 무신론적인 종교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불교관이 오랜 세월 삼신과 칠성신을 의지하고 믿어 온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기 때문에 무교의 신관인 칠성신과 산신 그리고 삼신을 제석으로 바꾸어 민중들 속으로 파고 들었다. 이렇게 무불습합巫佛習合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대웅전 뒤편에 있는 삼성각, 또는 칠성각 등이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와 민중 속에서 종교로 존재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교의 신들을 받아들여 불교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칠성님, 산신님, 삼신제석이 불교의 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으니 무교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가에는 동서남북 모든 하늘과 땅에 칠성님이 계신다. 이것은 여러 칠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인 칠성님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한다.

우물가에도 칠성님이 계시고 장독대에도 칠성님이 계시고 산에는 바위칠성이 계신다.

우리 할머니들은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장독대에다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빌었다. 이는 장독은 낮에는 빛이 잘 드는 곳이며 밤에는 달빛이 바로 비추는 곳이다. 이곳에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것은 정한 수에 곧장 칠성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또 우물가에서 칠성을 비는 이유는 우물을 바로 칠성이 비춰지기 때문에 우물이 바로 칠성이고, 우물의 형태가 원형보다는 정자 형태의 우물이 많은데, 이 정()자가 바로 칠성을 뜻하기 때문인 것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 토기에 우물 정자의 표시가 있었다고 광개토대왕의 문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광개토대왕의 문장이 아니라 칠성을 섬기는 고구려의 문장인 것이다. 즉 칠성이라는 뜻으로 보면 될 것이다.

아마 우물 정자가 들어 있는 토기들은 칠성님께 제를 지낼 때 사용하였던 토기들이 아닌가 한다. 일본에서도 우물 정자가 새겨져 있는 토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고구려가 일본에 진출하여 그곳에서 칠성님께 승리에 대한 감사의 제를 올렸다고 볼 수가 있다.

우리들은 명은 삼신이 주시고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고 있다.

또 죽어서도 칠성님에게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시신을 안치하는 칠성판이 그렇고 송장을 일곱 매듭으로 묶는 것 또한 칠성님을 나타낸다.

그러나 지금의 칠성판에는 일곱 개의 별이 없다. 칠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일깨워 준 칠성에서 태어나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칠성신앙을 송두리째 까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칠성신앙에서 비롯된 숫자가 37이다. 우리만 이 숫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 특히 3이란 숫자는 전 세계 모든 국가 구조의 기본 형태가 되었으며 일상생활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또 전 세계 종교에서도 3이란 숫자가 아주 중요한 숫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류의 시작을 삼신으로 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칠성제석거리는 인간에게 명을 주는 삼신과 명을 이어주고 복을 주고 죽음을 관장하는 칠성신과 우리의 뿌리인 한인, 한웅, 단군왕검을 받드는 굿거리이니 제일 큰 거리일 수밖에 없다.

북두칠성은 동북 간방의 하늘에서 뜬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는 방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동북 간방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토종들이 우수하고 지구상 식물의 종자가 되는 것이다. 토종학회에 따르면 외국의 종자회사들이 우리나라의 수많은 종자를 수집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한다.

현재 우리가 우리의 굿을 천대하고 멸시하듯 우리의 토종을, 종자를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생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이 비추는 동북 간방에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칠성이 우리의 큰 신으로 모셔진다.

그러나 칠성제석거리가 이상하게도 불교의 냄새를 짙게 풍기면서 자꾸만 변질되어 불사거리라고도 한다.

현재의 칠성거리는 무당이 장삼을 입고 바랑을 메고 염주를 목에 건 중의 복색을 하고 굿을 한다. 또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도 한다. 이는 정말 잘못된 것으로 칠성의 의미를 모르고 삼신의 의미를 모르는 무당들에 의하여 아니면 불교의 잠식에 의하여 변질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굿이다.

우리의 굿이 살아남기 위하여 시대에 따라 변천하였다 하더라도 너무나 많이 왜곡된 아주 잘못된 부분들이다. 언젠가는 칠성제석거리의 무가를 제대로 다시 잡아야 할 것이다.

또한 당금애기씨 이야기 등 칠성제석거리와 관련된 많은 부분들이 불교화 되어 있다. 이런 많은 부분들을 우리들 스스로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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