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왕 신이 된 부루단군
최초의 무당을 탄생케 한 부루(扶婁) 단군
무조신(巫祖神)으로 추앙받는 부루 단군

부루 단군이 살아생전 태자 시절부터 왕검 시절까지 뛰어난 능력과 위엄을 널리 떨치면서 백성들을 위하는 선정(善政)을 베풀어 모든 백성이 추앙하였다.
「BC 2183년 부루 단군께서 붕어하시니 이날 일식이 있었다. 산짐승도 무리를 지어 미친 듯 소리를 지르고 백성들은 심하게 통곡했다.
그 후 백성들은 집안에 땅을 골라 단을 설치하고 흙 그릇에 쌀과 곡식을 가득 담아 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를 ‘부루단지’라 부르고 업신으로 삼았다. 또 완전한 사람이 받는 계명이라고 전계佺戒라고도 불렀다.」라는 구절이 <단군세기>에 나온다.
여기서 전계란 인간이 조심하고 경계해서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계율이다. 또 7일을 기한으로 삼신께 3번 비는 것을 전계라고 한다. 이것은 임금이 시행하는 것으로 ‘신왕종전의 도(神王倧佺之道)’라 부른다. 이것은 상고시대 신인들의 계율을 깨우치고 따라야 완전한 왕이 다는 말이다.
<태백일사/신시본기>를 보면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이 있었다고 한다.
「첫 회 날엔 천신(天神)에게 제 지내고, 2회의 날엔 월신(月神)에게 제 지내고, 3회 날에는 수신(水神)에게 제 지내고, 4회 날엔 화신(火神)에게 제 지내고, 5회 날에는 목신(木神)에게 제 지내고, 6회 날에는 금신(金神)에게 제 지내고, 7회 날에는 토신(土神)에게 제를 지냈다.」 하였다.
이것은 하늘의 칠정(七政)에서 비롯되었다. 칠정을 달리 칠요(七曜)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모두가 7일을 기한으로 삼신님께 나아가 세 번을 빌고 모든 사람이 모여 계를 지켰다. 이 계를 지켜야만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하여 전계(佺戒)라고 하였다.
전계는 무당이 3·7일 기도, 즉 21일 기도가 기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야만 상고시대 신선들의 깨우침을 받는 완전한 인간, 즉 신인이 되는 것이다. 무가에 ‘삼일입소 칠일제배(三日入所 七日祭拜)’라는 구절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아기를 낳고 3 · 7일, 즉 21일이 지나야만 아기가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계(戒)’와 비슷한 말로 계불禊祓라는 말이 있다.
<부도지> 제10장
「유인씨가 천년이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禊祓)을 전수하며 나오지 아니 하였다.」
계불(禊祓)이란 소도(蘇塗) 제천행사(神市 · 朝市 · 海市)를 지내기 전에 먼저 목욕재계하는 유습이다. 즉 부정을 없애기 위하여 목욕하고 푸닥거리하는 것을 말한다.
계불과 유사한 계욕(禊浴)은 <삼국유사/가락국기>에서 나온다. 이것은 계불과 계욕이 비슷한 의미로 같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계불은 수계제불(修禊除祓), 계사(禊事), 불제(祓除), 제불(除祓) 등의 말과 함께 쓰이는데 이것은 박달나무에 신시(神市)를 열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의 일부라고 한다.
계불의식은 현재 종교적인 행사로 시작하였으나, 신시시대에 인간들은 어육(魚肉)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인간들이 반성하게 하고, 조상에 대하여 기른 공을 보답하기 위한 희생제(犧牲祭)를 올리면서 계불 의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희생제를 올릴 적에는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게 하였는데, 여기에는 물체(物体)가 대신하여, 오미(五味)의 과(過)를 반성함으로써 재앙을 멎게 하려는 육신고충(肉身苦衷)의 고백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계불의식이 지구촌에 널리 퍼져 모든 종교에서 신에 대한 종교 의식으로 행하게 되었다.
계불(禊祓)을 풀이하면, 부정을 씻기 위하여 목욕하는 것이 ‘계(禊)’라 하였고, 부정을 없애기 위하여 푸닥거리하는 것을 ‘불(祓)’이라 하였다. 즉 계불은 부정을 없애는 방법으로 목욕재계하고 푸닥거리하는 것을 말한다. 계불이라는 말은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푸닥거리라는 뜻이다.
부루단지를 업주가리 또는 업양(業樣)이라고 부르는데 ‘업양’은 ‘업왕’이 된 것으로 ‘업왕가리’라고도 부르고 있다. 벼를 익는 것을 축하하여 업이라 하였는데 업을 생산, 작업의 신이라 했다. 시골에 가면 지금도 집 안 한 곳의 단지에 볏짚으로 주저리를 틀어 지붕을 씌워 놓고 곡식을 담아 모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기 에 이어져 오는 것이다.
부루단지를 미신이니 귀신을 모시는 단지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조상을 기리는 행위로, 지금은 집안의 업신, 즉 재물을 벌어들이는 신으로 모셔진다.
굿거리 속에도 업양 타 준다고 하여 각종 업양을 놀며 복을 주는 거리가 있다.
무당들도 업양이라고 하여 업항아리를 모시는데 벼나 콩 그리고 물을 넣어 둔 단지를 따로 모시기도 한다.

벼는 터줏대감을 모시는 것을 나타내며, 콩은 족제비 등 복업을, 그리고 구렁이는 재물과 복을 지키는 업으로 삼는다. 구렁이 업을 모실 때는 삼베를 뱀처럼 꼬아서 단지에 넣는다. 마지막으로 물은 무량대복이라고 하여 용신을 업으로 모시는 항아리로 집안에 샘이 있거나 물이 많이 나는 집에 모시게 된다.
부루단지 앞에서 많은 백성 중 전계의 도를 완성한 여인들이 기도를 드렸는데 그 중 나이 많은 여인들이 영이 밝아 하늘의 뜻을 잘 받아들이므로 이들로 하여금 전계를 지키는 일을 맡겼다. 이를 무당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최초로 무당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제정일치 시대의 제사장으로서 무당이 아닌 일반 백성들 가운데 처음으로 무당이 탄생하게 되어 민간신앙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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