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숙정문의 액막이

愚悟 2006. 1. 23. 13:57

 

숙정문의 액막이


서울 삼청동은 옛 한양 도성 안에서 제일경치 좋은 곳으로 꼽혔다. 삼청동이라는 지명은 예전에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의 도교 3위를 모신 삼청전三淸殿이라는 곳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삼청동을 거쳐 지금의 성북동 골짜기 지금의 삼청각 옆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도성 4대문의 하나인 숙정문肅靖門이 나온다. 이 숙정문은 북문으로도 부르는데 서울 정북에 위치한 문으로 양주와 고양으로 통하는 문으로 태조 5년(1396년)에 창건하였다.

 

숙정문은 백악산에 자리 잡고 있다. 백악산은 백악동천이 있듯이 하늘의 신선들이 내려와 놀다 가는 곳이다. 즉, 하늘과 통하는 문이 있다는 곳이다.

백악산에는 매봉우리라는 뜻의 응봉鷹峯과 부엉이 바위라는 휴암鵂岩이, 그리고 영수도인이 살았다는 백련봉이라는 큰 바위가 있다. 그 외에 칠성을 의미하는 성제우물星祭井이 있으며, 그 외 민바위, 구덩이 바위 등이 있어 그 풍광이 매우 빼어난 곳으로 여름철에는 많은 선비를 비롯한 시인, 묵객들과 부녀자들이 넘쳐 났다고 한다.  

숙정문은 태종 때 촤양선이 경복궁의 양팔이 되는 창의문과 숙정문으로 사람이 통행하는 것은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상소를 올리자 조정에서 이 두문을 폐쇄하고 소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통행을 금지 시켰다. 그러나 태종 16년(1416년) 심한 가뭄이 들자 비를 오게 하기 위하여 숙정문을 열고 남대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음양오행설에 의하여 북은 음이요 곧 수水를 의미한다. 남은 양을 의미하므로 남문인 숭례문을 닫는 것은 양의 기운을 누르고 북문으로 음의 기군 즉, 비가 오게 기원한다는 뜻이다.

또 숙정문을 열어두면 북쪽의 음기가 그 문으로 들어와 도성의 부녀자들이 음란하게 된다고 하여 항상 그 문을 닫아두었다.

<동국세시기>에 「숙정문 골짜기는 매우 맑고 그윽하여 정월 보름 전에 민간의 부녀들이 세 번 이곳을 다녀오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액막이-도액度厄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즉 정월보름 전에 세 번 숙정문을 다녀와야 그해의 액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숙정문은 예전부터 서울 4대문 중 우리 민간신앙과 가장 갚은 관계가 있는 문이다.  문화재청에서 예전에 행했던 숙정문 액막이 풍속을 재현하고자 건국 이래 처음으로 오는 정월 대보름날 숙정문에서 액막이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뉴스를 접한 기독교 교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자기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없는 받아들일 수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즉 미신을 조장한다는 명분인데 구체적인 반대 성명이 발표되지 않아 논리적인 반박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왜곡된 역사관과 잘못된 종교관으로 기독교에서 일관되게 주장해 오는 것은 우리민족의 전통문화요 민족종교인 무교를 미신으로 치부하여 폄하하고 말살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종교관이 다시 단군상 철거라는 만행으로 재현되고 있다. 몇 년 전 우리를 경악케 한 기독교의 단군 목 자르기 만행이 기억 속에 아직 남아 있건만  다시 단군상을 철거하고 민족문화를 재현하려는 숙정문 액막이 풍속을 자기네 교리에 위배된다고 전 국민들이 일 년 동안 액을 막아 행복하게 자낼 수 있는 행복추구권과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안달이 났다.

숙정문에서 무당이 굿을 하고 액막이를 하면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모든 국민이 고통에 빠진다는 편견과 국민의 행복은 기독교를 믿음으로서 추구할 수 있다는 아집과 굿을 하면 한국의 기독교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듯 한 과대 망상적 피해에 휩싸여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은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이 무엇이며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행동이 종교로서 종교의 가지를 더 높이는 올바른 행동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사사건건 우리 전통문화 행사에 제동을 걸고 방해만 일삼아 왔다. 기독교는 타 종교와 함께 존립할 수 없는 이 지구상에 자신들만 존재하여야 한다는 선민사상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에 살면서 우리 문화를 배척하고 애써 외면하려는 그들의 행태를 과연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누구를 위하여 우리 전통문화의 말살을 꾀하고 있는지 묻고 싣다.

무교보다 더 미신적인 한국의 기독교는 유독 무교에 대하여 더욱 더 왜곡하고 폄하하는 것은 한국의 기독교가 무교의 변형종교로 같은 업종에서 볼 수 있는 경쟁의식에서 그러

 

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한국의 기독교가 무교의 기본정신인 생생지생生生之生과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정신만 안다면 지금처럼 어리석은 행동들은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같은 민족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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