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무형문화재 관리의 허점

愚悟 2005. 5. 19. 22:56

무형문화재 관리의 허점


1960년대 산업현대화 과정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보호 육성하는 차원에서 국가 및 시도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1964년 12월 7일 종묘제례악이 지정되었다. 그 후 음악과 민요, 그리고 무용, 놀이와 의식, 연극, 공예, 음식, 무예 등 각 분야에서 우리가 영원히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무형문화재를 발굴하여 국가 및 시도지정 문화재로 지정하여 왔다.

무교의 굿이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기는 1967년 1월 16일 강릉단오제 때부터 이다. 그 때도 무녀인 빈순예는 보유자가 아닌 조교로 지정 받았다가 2000년대 <강릉단오굿>의 주무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 받았다.

무교의 굿이 단독으로 국가지정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980년 11월 17일에 제70호로 <양주소놀이굿>과 제71호로 <제주칠머리당굿>이 그리고 제72호로 <진도씻김굿>이 함께 지정되었다. 그 후 1985년 2월 1일 해안지방의 풍어제인 <동해안별신굿> <서해안별신굿 및 대동굿> <위도 띠배놀이> 가 국가지정무형문화재 82-가,나,다 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87년 7월 1일 뒤늦게 <남해안별신굿>이 국가지정무형문화재 82-라 호로 지정되었으며 제90호로 황해도 평산소놀음굿(1988.8.1)이 제98호로 경기도 도당굿(1990.10.10)이 지정되었다. 그 후 한동안 지정이 없다가 1996년 5월 1일 서울새남굿이 국가지정무형문화재 104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세습무를 중심으로 한 마을 굿의 형태만 지정하였으나 더 많은 굿을 지정하여 보존 전승하여야 한다는 학자들의 주장과 그 가치를 인정하여 서해안 별신굿 및 대동제와 위도 띠배놀이 그리고 마을굿 형태인 도당굿이나 부군굿이 아닌 개인의 지노귀굿인 서울새남굿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정되었다.

그리고 지정된 문화재를 보존 전승하기 위하여 문화재지정 전승체계를 기능보유자, 명예보유자, 전수교육조교, 이수자, 전수 장학생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세습무들이 주관하는 굿들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어도 굿의 기능과 예능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없어 굿의 전승 보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이유로 전승과정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여 전승이 힘들고 어려운 면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굿에만 전념하기엔 경제적인 수입이 없어 생계유지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를 생계수단으로 하는 강신무들은 완전히 다르다. 강신무가 주관하는 굿들이 문화재로 지정받으면 곧 그 굿을 주관하는 무당을 국가가 인정한 기능과 예능이 뛰어난 무당인 것처럼 일반인들은 생각하고 많은 무당들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주관하는 굿이 문화재로 지정받는 순간 굿의 이름은 그 무당의 브랜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강신무들은 무형문화재 이수자만 되어도 자신의 영적인 능력이나 굿의 기능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신뢰도까지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문화재 기능보유자인 무당들의 신딸이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그 굿의 이수자만 되면 일반인에게 자신은 문화재청 즉 국가에서 인정한 무당인양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0호 00굿 이수자> 란 간판을 내걸고 손님을 끌어들여 수익을 증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중요문화재 전승체계 중 이수자 자격을 문화재 보호법 시행령 제18조에는 “보유자 또는 보유 단체가 3년 이상 전수교육을 받은 사람을 심사하여 그 기능 또는 예능이 상당 수준에 이른 자에게 이수증을 교부함” 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요즘 곳곳에 <00굿 이수자> 란 간판을 내걸고 있는 무당 집을 많이 보게 된다.

하물며 일본에도 이수자가 있으니 그 무당이 얼마나 그 굿의 기능보유자 밑에서 기능과 예능을 전수 받았는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무당들 사이에 신 엄마와 신 딸 사이는 군법보다 더 엄하고 무섭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말해주듯 요즘은 처음 신을 내려주어 자신을 무당이 되게 한 신 엄마와 3년을 같이 지내는 무당을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그런 무당들의 행태를 볼 때  기능보유자 밑에서 수많은 제자들과 경쟁하여 3년 이상을 기능과 예능을 전수 받아 이수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 험난한 길이며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로 지정 된 굿의 기능 및 예능 이수자가 많이 있다.

예전에는 이수자가 되기 위해선 3년 동안 교육은 물론이고 마지막 자격심사로 문화재위원들이 심사를 하여 이수자로 인정할지를 결정하였지만 99년도부터 그 굿의 기능보유자 보다 문화재위원들이 그 굿을 더 잘 알 수 없다는 좋은 뜻에서 전적으로 보유자에게 이수자 지정 권한을 넘겼다. 그때부터 보유자들은 이수자를 지정하여 문화재청에 신고만하면 되는 것으로 변하였다.

그 후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흉측한 소문들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그 내용은 지정 문화재 기능 이수증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는 제자들 간의 알력에서 서로 비난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말이라고 가볍게 넘겨 버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그런 소문은 공공연히 돌기 시작하였다. 즉 기능보유자가 자기의 금전적인 필요에 따라 이수증을 원하는 무당들을 골라 노골적으로 이수증을 자격증인양 만들어주고 돈을 챙긴다는 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는 엉터리무당들은 이수증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런 엉터리 가짜무당들이 몰리게 되었다. 그러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이수자로 문화재청에 신고할 수가 없다는 핑계로 소위 인원 제한을 두기 시작하였고 그 순번을 기다리는 무당들이 줄을 서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급하게 이수증을 따고 싶은 무당들이 그 가격을 올리게 되어 지금은 기천만 원은 호가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런 엉터리 같은 황당무계한 소문이 어디서 나오고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굿판을 다니는 많은 사람들과 무당들 입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것을 보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이 생각나지 아닐 수 없다.

어렵게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그 굿을 보존 전승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보유자와 진정 많은 인내와 노력으로 굿의 기능과 예능을 전수받아 이수자가 된 참된 무당들의 명예를 위해서도 문화재를 지정하고 관리하는 문화재청에서는 이런 흉측한 소문들은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굿의 기능과 예능을 보전 전승하라는 본래의 취지를 망각하고 이수증 장사를 한다면 분명히 그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물론이고 문화재 지정을 철회하는 등 다른 보유자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엄한 징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교의 굿뿐만 아니라 다른 기능보유자들도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문화재 기능보유자로 한번 지정되면 죽을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영원히 문화재로 행세하며 온갖 냄새를 다 풍겨도 그냥 둔다면 본래의 지정 의도에서 너무나 벗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기능보유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도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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