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무교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적 시선

愚悟 2005. 5. 19. 22:52

무교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적 시선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모든 것을 토속신앙인 무교에 의존하여 불확실한 자신들의 앞날을 상담하고 조언 받아 미래를 예견하여 방비를 하였지만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 때 미신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씌어 배척하면서부터 직금까지 무당집을 찾아오면서 남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에는 무당을 그렇게 믿고 따르던 사람도 공식적으로는 무교를 부정하고 멀리하는 것처럼 하여야만 자기의 체면이 올라가는 듯한, 행동을 보일 때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자신의 체면이나 사회적 지위 아니면 분위기 탓으로 본의 아니게 이중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이중적인 행동들이 바로 무교를 믿고 의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교는 오랜 세월 탄압을 받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민중들과 함께 지내왔다.

그러나 오랜 세월 우리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남의 정신으로 살아온 우리들은 우리의 토속종교인 무교를 경시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조선시대에 유학을 숭상하면서 혹세무민한다는 논리로 천대하고 멸시하던 습관과 일제강점기에 미신이라고 매도하였던 그 버릇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은 항상 천지신명께 자손들과 집안의 안녕을 빌었고 부엌 부뚜막에 정화수를 떠놓고 조왕신에게 기원하는 것을 생활처럼 여겼다.

지금도 길을 가다 방향을 잡을 때나, 무슨 일이 안 풀릴 때는 점을 쳐보라는 말을 쉽게 한다. 이 말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 우리의 무교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모든 것을 토속신앙인 무교에 의존하여 점을 쳐보고 미래를 예견하여 방비를 하여 왔건만 일제의 잔재인 미신이라는 굴레를 지금까지도 뒤집어 씌어 저급한 사람, 즉 신분이 낮고 무식한 사람들만 무당집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그 여파로 무당집을 찾아오면서 남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평소에는 무당을 그렇게 믿고 따르던 사람도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무교를 부정하고 자기는 무교와 아무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는 듯, 하여야만 자기의 체면이 올라가는 듯 한 행동을 보일 때면 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무당들은 남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많은 사람들의 집안의 안녕과 발전을 위하여 많은 기도로 염원을 한다.

이렇게 남을 위하여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 당사자들은 무당집에 드나든다는 것을 스스로 창피하게 생각하고 감추려는 그 이중적인 행동을 많이 보이고 있다 하겠다.

이런 행동들은 우리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서양의 잣대인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유교적인 관습에 의한 시각으로, 일제 강점기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릇된 시각으로 무교를 바라보면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한다.

수십만이나 된다는 무속인들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일 년이면 수 백 만 명은 될 것인데 몇 사람이나 떳떳하게 자신은 무교를 신봉한다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무교를 신봉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무당 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점 보러 간다고 비아냥거릴까? 우리는 사찰이나 교회, 성당에 들어가고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도 아무런 편견을 가지지 않는데 왜 무당 집에 드나드는 사람을 보면 이상한 생각들을 가질까? 아니면 무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신심이 부족하여 스스로 느끼는 자격지심일까?

무교를 신봉하는 사람들 중 서민들 보다 부유층이나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눈치를 살피는 경향이 있다. 요즘은 사찰은 물론이요 교회에서까지 미래를 예언하여 준다고 하는데 무당집에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여 상담하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늘 그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무당집을 찾는다 한들 크게 발전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의 무교가 좀 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무당들의 인격을 높이려면 무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좀 더 솔직하게 무교를 신봉하여야 할 것이다. 무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당당한 행동에서 우리의 전통신앙인 무교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며 무교인 들의 질적 향상은 물론이요 어느 종교의 사제 못지않은 훌륭한 무교인 들이 많이 나오리라 믿는다. 또한 무교인 들은 그 신도들을 통하여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더욱 더 정진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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