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들과 20년 가까이 생활하다보니 나도 반 무당이 되었다.
무당들처럼 누구를 쳐다보면 그 집 조상이나 그 사람의 운명을 볼 수 있는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동안 무교 속에 떠도는 유언비어가 두려워, 괜히 씹어되는 입에서 풍기는 구린내가 역겨워 가급적이면 무교인들과 접촉을 피해왔다.
그대신 많은 카페에서 무교의 현 실정을 지켜보고 무교인들의 생각들을 훔쳐보곤 했다.
그동안 느낀 점은 소위 신가물이라는 많은 예비 무교인들이 겪는 아픔과 애동신제자들의 힘든 걸음마들이었다.
이런 아픔과 홀로서기의 힘든 과정들을 보면서 무교는 참으로 냉혹한 집단이라는 것을 새삼느끼게 된다. 모든 것이 금전으로 연결되어 있어 신가물로 재산 탕진하고 빚내어 내림굿한 애동들에게는 정말로 홀로 서기 힘든 세계가 분명하다.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 중에 품앗이나 향약, 두레 등의 좋은 풍속이 있다.
두레나 품앗이 등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모두 잘 알것이다.
이렇게 좋은 풍속이 우리생활 주변에 지금도 널리 행해지고 있으며 두레나 품앗이를 통하여 서로 돕고 정을 돈독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종교라고 할수 있는 무교에는 이런 두레나 품앗이라는 좋은 풍속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민족전통문화의 원형이면서 민족전통문화의 최후의 지킴이라고 할 수 있는 무교가 두레나 품앗이 향약이라는 좋은 풍속을 실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무교인들은 누구나 어렵게 신내림을 받고 힘든 길을 걸어 왔기에 고생한 삶에 대한 보상 심리로 다른 종교의 사제보다 돈 욕심을 더 부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같은 길을 가야만 하는, 무교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예전에 자신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금전적으론 관대해져야만 할 것인데 지금의 행태는 내림굿은 무슨 봉 잡는 굿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또한 어떤 이유든 신선생과 결별하고 홀로서기를 시도한 애동들에게는 이 세계가 참으로 냉혹한 세계로 아는 소리 한다는 선배들은 전부 굿을 하라는 소리들만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다.
왜 무교인들은 두레나 품앗이 정신이 상실 되었을까?
필자는 카페 등에서 힘든 상황을 나열하고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신가물들을 볼 때 마다 이 사람들을 구제하지 못하는, 도움의 손길을 내 밀지 않는 무교인들의 행태가 얄밉기만 하다.
물론 말 많은 세계, 자신의 뜻과 달리 악의적으로 퍼지는 소문 등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추악한 행태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섰다간 괜히 구설에 휘말려 머리만 아파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하지만 언제까지 더러워서 피하기만 할 것인가?
민족 종교인 무교의 사제로서 무교의 깊은 정신을 깨우쳐 널리 알리고, 무교의 저변확대와 무교인의 이미지 재고를 위하여 두레의 정신을 실천하는 무교인들의 모임이 꼭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필자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몇몇 뜻있는 사람들과 두레를 목적으로 무교인들이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물론 무교인들은 모임이 안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많을 것이다.
또한 필자를 모욕하는 글이나, 순수하지 못한 그 어떤 목적을 위하여 움직인다고 비난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부터 먼저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시기심이나 열등감에서 오는 것으로 무교의 발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가 모임을 주도하든 여기 저기서 우리 고유의 전통인 <두레 >를 실천하는 모임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램이다.
또한 <두레>의 정신을 왜곡하여 잔머리를 굴리는 무교인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의 마음은 지금 무교의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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