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신(城主神)
음력 시월이면 찾는 집안의 큰 신
집안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신
<선반에 모신 성주신>
우리들은 추수가 끝나고 시월이 되면 상달이라 하여 시월 하고도 무오(戊午)날을 골라 안택 고사 등 정성을 많이 드린다. 이때는 신곡으로 시루떡을 찌고 술과 과일을 차려놓고 굿이나 정성을 드리는데 이 정성은 성주(城主)님께 드리는 정성이 되는 것인데 성주는 보통 우리가 그 집안의 제일 큰 신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주신을 모시는 형태는 단지에 모시는 형태와 종이로 모시는 형태 두 가지가 있다. 성주단지는 안방 시렁이나 등에 놓아두고 종이성주는 대들보나 안방 중앙 위쪽에 백지에다 태실을 걸어 매달아 놓는 형태가 있다. 성주단지에는 햇살을 넣는 것이 보통이나 경우에 따라서 동전을 넣기도 한다. 이사를 갈 땐 성주단지는 땅에 묻고 그 속의 쌀은 떡을 해서 집안 식구들만 먹는다. 성주종이는 나무에 매달아 놓고 간다.
성주신의 신체를 봉안하는 것을 ‘성주 옷 입힌다.‘성주 맨다. 라고 하는데 대주의 나이가 ’3‘이나 ’7‘이 되는 해에 매고 굿을 하면서 모시기도 한다. 여기서 ’3‘이나 ’7‘이라는 숫자는 우리 민족의 신앙인 삼신과 칠성에서 유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주(호주)가 죽으면 기존 성주를 땅에 묻거나 태워 없애고 새 성주를 모시게 된다.
성주신은 가택뿐만 아니라 배에서도 모신다. 보통 서낭 , 배성주, 배서낭, 당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신체는 한지에 신의 이름을 쓴 것을 모시거나, 아님 배에 세우는 깃발, 쌀을 넣은 단지, 등으로 모신다. 이 단지는 기관실 정면에 놓는다. 이밖에 일반고사 후 하는 행위와 같이 북어에 실을 묶어 두기도 하고 네모로 접은 백지에 삼색 실을 엮어 둔 것도 있다.
성주신은 집안에 부정한 일이나 흉한 일이 일어나면 떠나버린다고 믿고 있다. 성주신이 떠나면 그 집안은 재앙이 닥쳐 쇠퇴하게 되므로 항상 집인 식구들은 집안을 청결히 하고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올바른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무교에 존재하는 모든 가택신은 이렇게 인간의 올바른 삶을 유도하는, 보이지 않으나 인간이 따를 수밖에 없는 불문율 같은 존재로 항상 우리를 감시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우리가 모시는 성주신은 단군으로부터 시작한다.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왕검께서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臣智)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寄省)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는 호적을 관리토록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궁실을 짓도록 명을 받은 성조란 분이 처음으로 궁궐을 지으면서 그 건축 방법이 민간에게 전달되어 백성들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을 짓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백성들은 집을 짓는 신으로 성조를 모시게 되었고 즉 인간들에게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준 분이 성조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집을 짓고 나면 성조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뜻에서 굿이나 정성을 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성조신(成造神)이라는 말이 성주신으로 변하여 집안의 우환 질병을 막아 주고 집안에 큰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하여 주시는 분이 성주신이라고 믿고 있으며 민가에서는 감사의 뜻으로 매년 시월상달에 성주신에게 새로 나온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지금은 하루에도 수십 채의 집들이 세워지고 아파트와 빌라 등이 즐비한 요즘은 성조신이 집을 짓는 방법을 일깨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나 건축 기술이 발달하고 시멘트, 철근 등의 자재가 좋아 집을 한 채 짓는 데 몇 달이 걸리지 않지만 그 집을 짓는 기본이 바로 성조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안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할 것이며 성조님께 감사의 마음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도 한옥을 지을 때는 반드시 성주신과 터주신에게 고사 등을 지내고 집을 짓는다. 특히 상량식을 할 때면 어김없이 무당을 불러 정성을 드리는데 목수는 무당의 입에서 어떤 공수가 나올는지 가장 긴장을 하였다고 한다. 무당 입에서 나오는 공수대로 고치고 다시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량식의 성패는 그날 정성을 드리는 무당에게 달렸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 성주굿에는 집을 짓는 과정이 터를 다지는 일부터 시작하여 나무를 고르는 일, 나무를 다듬는 일 등 집을 완성할 때까지의 어려움과 해학이 굿거리 사설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성조라고 부르기보다는 성주(城主)라고 부르고 있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조상의 분묘가 있는 시골이면 그 고을의 수령을 성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약 조상의 분묘가 없고 주택만 있다면 그 고을 수령을 터주(土主)라 말한다.
또 한 집안의 가장을 성주라고 하기도 하여 성주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이 바로 가장의 무병장수와 복을 비는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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