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愚悟 2009. 7. 12. 17:26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무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전통종교다.

오랜 세월 많은 위정자로부터 핍박과 멸시를 받아왔지만 풀뿌리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왔다.

이렇게 무교가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온 이유는 바로 무교를 믿고 따르는 많은 민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위정자가 무교를 박해하고 멸시하며 소멸시키려고 하여도 무교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는 무교의 피가 흐르고, 삼신할머니부터 내려온 무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많은 세월동안 온갖 박해와 멸시를 받아왔던 무교가 지금은 나름대로 좋은 환경 속에서 자생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무교의 토양을 만들기 위하여 진정으로 고민하는 무교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무교인들이 입으로만 무교가 이래서는 안된다,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막상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어떤 행동을 취하는 무교인은 없다.

물론 많은 무속단체가 그동안 무교인들에게 많은 실망감과 부조리 등으로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일 수가 있다.

 

그러나 무교인이라면 무교의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들의 자손들을 생각해서라도 무교의 위상과 발전을 도모하여야 한다.

무교의 발전은 곧 무교인들의 사회적인 위상과 맞물려있으므로, 무교의 발전이 곧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는 등 거창하게 말을 하지 않아도 무교인에게 가장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요즘 무교인들은 민족종교인 무교의 사제로서 가져야 하는 사명감과 긍지는 찾아보려야 볼 수 없고, 오직 나만 잘 불리고 유명해져서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얄팍한 생각들만 가지고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반인들이 무교인들을 보고 돈에 환장한 사람들 같다고 비아냥거린다.

다른 종교의 사제들도 돈을 무지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 무교인들 보다 더 많이 받아 챙긴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사제는 돈을 밝힌다고 하지 않는다. 유독 무교인들에게만 그런 소리가 따라 다니는 것은 바로 무식하게 돈을 벌기 때문이다.

좀 더 폼 나게 돈을 벌지 못하고 무식하게 벌기 때문에 적은 돈에도 일반인들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또 무당치고 돈을 좀 벌고 나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산에 들어가 절이나 짓고 살지’ 하는 말이다.

엄연히 불교와 무교는 다르건만 무당들은 돈만 벌면 불교로 귀의하겠다는 이야기다.

불교의 옷을 입고 무속행위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좀 더 폼 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식이 팽배해 있는 한 무교의 발전은 없다.

무교인으로 살면서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해야만 무교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깊게 고민할 때가 왔다.

지금껏 모은 재산 중 일부분을 투자하여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나 생각은 가진 무교인들을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다.

 

오직 힘들게 살아와서 번 돈이니, 무당 자식이라고 많은 설움을 받은 불쌍한 자식들을 위하여 유산을 물러줘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다.

무당이 천대받지 않고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시대를 불평하고 원망하며 오직 돈의 노예가 되어 지낸다면 무교의 발전은 영원히 기대할 수 없다.

무교가 민족종교로써 가지는 철학과 사상 그리고 긍지와 자부심을 널리 알리고 무당이 바로 민족종교의 사제라는 사실을, 무당이 존경받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 자손들에게 물러주어도 부모가 무당이었다는 꼬리표는 영원히 달고 다니게 될 것이며 이 꼬리표는 자손들의 가슴에 무거운 멍에가 되어 힘들게 할 것이다.

 

이제는 무교인들도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내 스스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무교인들이 무교의 발전을 외면한다면 누가 무교의 발전을 걱정하고 노력할 것인가?

이제 우리 모두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할 때가 온 것 같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많은 무교인들이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우리 모두 중지를 모아 의견을 결집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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