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무당이다

종자 전쟁의 역사

愚悟 2011. 9. 15. 11:02

어제 오늘 일 아닌 종자전쟁의 역사
반재원의 우리 희망 토종약초<2> 문익점의 목화씨 반입이 종자전쟁
순결의 상징 '흰백합꽃', 네덜란드가 우리의 하늘말나리 꽃 가져가 개량
 
반재원
종자전쟁의 역사는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문익점의 목화씨 반입부터가 종자전쟁이며, 100여 년 전인 1890년에 미국의 최대 육종업체인 뉴욕 피터 핸더슨 회사에서 배재학당 등 기독교 재단학교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까지 우리의 잔디씨를 인천항을 통해 소쿠리채 반출해갔고 개량을 거듭한 끝에 정원이나 야구장, 축구장, 테니스장, 골프장에 심는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금잔디를 만든 것을 비롯하여 1970년대 중반에 미국의 식물학자들이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허락 하에 전국의 산야를 1년여에 걸쳐 샅샅이 뒤져 261종에 달하는 우리의 식물들을 반출해 간 것도 종자 전쟁이었다.
 
그때 우리 정부는 무슨 영광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듯이 반출에 최대한 예산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소고기 주 수출국인 호주가 1989년 토종한우의 정자구입에 실패하자 미국과 더불어 한우를 밀반출하여 개량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1986년 우리의 소값 파동 당시 수입해간 한우를 신주 모시듯이 개량사육하고 있다.

제주도 구상나무는 1917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부설 아놀드 수목원의 직원이 미국으로 가져가 지금까지 15개 품종으로 개량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신시켰으며, 또 세계적인 정원수로 자리잡고 있는 라일락은 서기 1947년 미국 뉴햄프셔대학교 적십자협의회의 한 직원이 한국에 파견 근무 할 때 북한산 백운대에서 털 개회나무 씨앗 12개를 채취하여 그 중 7개를 발아시켜 개량한 것이다. 이것을 한국에서 온 아가씨라는 애칭으로 “미스킴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고 현재 화훼 중에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정원수가 되었다.
 
뉴질랜드는 중국의 야생다래를 가져다가 개량시켜 ‘키위’란 이름으로 전세계에 수출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의 키위 수출회사인 ‘제스프리’사는 매년 총 수출액 3억 달러의 1%에 해당하는 300만 달러를 새 품종 개발비로 재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패랭이꽃’은 전세계의 어버이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으로 둔갑한지 이미 오래다. 순결의 상징인 흰백합도 네덜란드가 우리의 하늘말나리 꽃을 가져가서 개량한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에 권장․재배되고 있는 밀은 또 어떤가. 우리의 앉은뱅이 밀은 1905년께 일본으로 유출되었고 1936년에 일본의 이나즈카 곤지로 박사에 의해 개량되어 나온 것이 농림 10호였다. 1904~1905년에 일본 동경대 농과대학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일본농상무성 조사단이 조선의 농업실태를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우리 밀의 종류를 앉은뱅이밀, 난쟁이밀 등으로 구별해 놓고 있다.
 
또 1933년에 펴낸 「조선의 주요 작물의 품종명」에도 우리의 앉은뱅이밀의 이름이 지방에 따라 밀양, 자소맥, 난쟁이밀 등 10여 가지가 되는 것으로 나타나있어 일본인들이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세밀히 조사해 갔는지 알 수 있다. 이 농림10호는 키가 작고 이삭이 크면서 줄기가 굵어 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는 장점을 갖추었다.
 
이것을 1945년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진주군의 농업고문이었던 사몬(S.C.Salmon)박사가 미국으로 가져갔으며 그후 보겔(O.A.Vogel)박사에 의해 개량이 거듭되었고, 1964년 보록(N.E.Borlaug)박사에 의해 그 당시 보통 밀의 약4.5배의 수확량을 내는 신품종 밀「펜자모T-62」,「소노라F-64」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즉 우리의 앉은뱅이 밀이 일본으로 건너가 달마가 되었고 이 키작은 일본계 밀인 달마는 다시 키큰 미국계 밀인 후르츠와 만나 교잡종 후르츠 달마를 낳고 또 이 후르츠 달마를 아버지로 하고 터키레드를 어머니로 하여 농림10호가 생겨난 것이며, 이 농림10호를 조상으로 하여 드디어 녹색혁명의 바람을 일으킨 신품종 ‘소노라’가 탄생된 것이다. 달마(다루마)란 뜻은 바로 앉은뱅이라는 뜻이다. 마치 독도가 돌섬이란 뜻의 일본말인 다께시마가 된 것과도 같은 경우라 하겠다.

현재 미국에서 재배하고 있는 밀의 90% 이상이 이 농림 10호 즉, 앉은뱅이 밀의 혈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아이오와주의 밀생산 농가에서 태어나 미네소타 주립대학 농학부를 졸업한 보록 박사는 멕시코의 국제 맥류 옥수수 연구소에서 밀품종 개량에 전념했는데 이 밀로 1960년대말 인도와 파키스탄의 수억의 인구를 기아에서 구출하여 녹색혁명을 불러 일으켰다는 공적을 인정받아 1970년 농학자로서는 세계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던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인구를 기아에서 해방하던 1950년때에 우리의 앉은뱅이 밀은 이미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경남 남해군 설천면 덕신리의 김재명 교장 선생님(77세) 등 10여 가구가 재배하고 있는 앉은뱅이 밀은 키가 50-80센티 정도인데( 50대 이후의 어른들에게는 어릴 때 밀서리를 해먹던) 그 특유의 고소한 맛은 다른 밀이 따라오지 못하는 독특한 맛으로 알려져 있다. 앉은뱅이 밀은 낱알 색깔이 누런 달걀모양의 타원형으로 일반 밀과는 모양이 다를 뿐 아니라 껍질이 두껍고 밀가루가 많이 나와 고추장용이나 누룩 빚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토종 밀로 누룩을 빚는 내용은 농가월령가 6월령에 나온다.(원두막에 참외 따고 밀 갈아 국수하고~ 밀기울을 한데모아 누룩을 드디어라) 토종 밀을 껍질채로 대추와 감초를 넣고 달인 감맥 대조탕은 여성의 심한 히스테리의 특효약이다. 우리 나라의 밀 재배는 경주 반월 성터에서 발굴된 탄화된 밀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주곡으로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재원 씨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