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라 부르지 말라.
필자가 금년 초에 모 방송 출연을 할 때 함께 출연한 방송인이 점쟁이라고 호칭을 하기에 경고를 준 적이 있다.
그러나 정치인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방송에 나와 아무 생각 없이 ‘점쟁이’이란 소리를 한다. 그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30만 무교인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 이유는 점쟁이라는 말은 무교인을 멸시하고 천하게 여길 때 부르는 호칭이기 때문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점쟁이와 무교인은 다르지만 사회의 인식은 다 같은 집단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무교인을 부르는 호칭은 고대부터 불러왔던 ‘만신’을 비롯해 ‘당골’‘무당’‘무녀’ 등이 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8천민으로 취급되어 아주 멸시하는 호칭으로 ‘점쟁이’ ‘점바치’ 등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무교를 폄하하기위하여 일본 학자들이 무속이라 호칭하면서 자연스럽게 무당을 무속인으로 부르게 되었고 오늘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조선시대 천민으로 취급되어 멸시 받을 때 부르던 호칭인 ‘점쟁이’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현재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무교인을 천시하는 경향이 밑바탕에 깔려 있으며, 이런 호칭에 대하여 누구하나 항의 하는 집단이나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쟁이라는 말은 접미사로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개구쟁이, 멋쟁이, 겁쟁이, 고집쟁이 등 애교스럽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난쟁이라고 하면 신체적 결합을 비아냥거리는 호칭으로 들리기도 한다.
‘쟁이’의 어원은 장(匠)이 즉 기술자, 장인을 뜻하는 말이지만 조선시대 천민으로 여겼던 직업들 뒤에 접미사로 현대어 ‘쟁이’가 붙으면서 소위 각광받지 못하는 천한 직업을 나타내는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특히 무교인에게 ‘점쟁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다분히 무교인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쟁이’와 같은 맥락으로 천하다는 의미로 사용한 또 다른 단어가 바로 ‘바치’이다.
소위 ‘점바치’는 점치는 사람, ‘갓바치’는 가죽신발을 만드는 사람이란 뜻으로 조선시대 황희가 소위 칠반천인(七班賤人) 즉 일곱 천민 계급을 정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치’라는 호칭이 들어가는 직업이다.
조선시대 ‘바치’라 호칭하는 천한 직업에 종사한 사람들은 현대에 와서도 ‘쟁이’라는 접미사가 뒤에 붙어 여전히 천한 직업이란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상상도 하지 못한 다양한 직종이 많이 생기게 되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인식들이 정착되면서 자연스럽게 ‘쟁이’라고 호칭하는 직업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유독 아직도 ‘쟁이’라는 호칭을 붙이면서 무시하고 폄하하는 듯 말하는 직업이 바로 ‘점쟁이’란 호칭이다.
대한민국에 ‘쟁이’를 붙이는 직업이 사라진지가 언젠데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무교인들을 ‘점쟁이’라고 호칭하는 정치인, 방송인 등을 비롯한 지식인들과 많은 사람들은 각성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쟁이’를 붙여서 부르는 직업이 어디에도 없건만 아직 ‘점쟁이’란 말만 남았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무교인을 조선시대의 천민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조선시대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남의 정신으로, 남의 시각으로, 남의 잣대로 우리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재단하였던 얼빠진 시대였기에 무교를 바로 인식하고 볼 수가 없었던 결과 만들어진 호칭이 바로 ‘점쟁이’다.
그 결과 무교가 가진 우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천지인 합일과 조화의 사상, 더 나아가 천지인 가운데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본 사상과 홍익정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공자만 최고의 善인 양 치켜세웠다.
그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직종들이 어우러져 지탱해나가는 21세기 사회에서 아직도 봉건시대 천대와 멸시의 대명사로 불리던 ‘점쟁ㅇ;’란 호칭을 아무 생각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무교의 위치와 무교인의 위상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지금 수많은 무속 단체가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활동하고 있지만, 이런 사소한 호칭이나 무교를 폄하하는 방송 등에 말 한마디 못하고 있으니 과연 무속단체는 누굴 위해서 뭐 때문에 존재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무교인들은 그 누구라도 ‘점쟁이’라고 부를 땐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려 무교를 폄하하고 무시해도 된다는 관념을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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