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절의 새 기러기
지금쯤이면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기러기 떼들을 볼 수가 있다. 기러기는 겨울철새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날아간다. 이렇게 기러기는 일정한 계절에 맞춰 이동을 하므로 옛 선비들은 곧잘 기러기를 빗대어 소식을 전하곤 하였다. 또한 기러기는 이별이나 쓸쓸함의 상징으로도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 혼자된 사람을 “짝 잃은 외기러기”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혼자된 홀아비나 과부의 외로움을 나타내기도 하는 말이다.
우리는 기러기를 보고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기러기를 보고 쓸쓸함이나 외로움, 그리고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한 옛 선인들의 영향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러기라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통혼례에서 등장하는 기러기이다.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장가를 갈 때 기러기 한 쌍을 앞장세워 간다. 이것을 목안(木雁)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끔 혼례 때 사용되는 기러기를 원앙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원앙은 암컷이 수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갈아치운다는 것과 일부다처제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원앙 부부사이가 좋다고 하여 신혼부부의 금실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기러기처럼 상징적인 의미는 가지지 못한다.
그러면 많은 동물들 중에서 왜 기러기가 선택되어 인간의 대사라는 혼인에 등장하여 앞장서 가는 것일까?
기러기는 한번 짝을 지어면 평생 그 짝과 지낸다고 한다. 만약 한쪽 즉 수컷이나 암컷 중 한 마리가 죽게 되면 남은 기러기는 죽을 때까지 정조를 지키고 혼자 살아간다고 한다.
이러한 기러기의 습성 때문에 혼인에 기러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평생 동안 변치 말고 함께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또 살다보면 혹 불행한 일을 닥쳐 한쪽이 먼저 갈 수도 있는 일이니 한쪽이 먼저 가더라도 기러기처럼 정조를 지키고 혼자 살아가라는 뜻도 있다 하겠다.
충청도에선 혼례 때 전안상에 목안을 올려놓고 북향사배를 드리기도 한다. 그런 다음 신부의 어미가 치마로 기러기를 덮어서 가지고 나가는데 이것은 기러기가 날아가지 말라는 의미와 알을 잘 낳으라는 의미 즉, 생산을 잘하여 자식을 많이 두라는 의미도 있다. 치마로 싼 기러기를 쌀독에 넣거나 안방에 던져서 첫 아이의 성별을 점치기도 한다. 기러기 머리가 왼쪽으로 가면 아들을 낳고, 오른쪽으로 가면 딸을 낳는다는 것이다.
기러기는 작은 기러기는 안(雁)이라 부르고 큰 기러기는 홍(鴻)이라 부른다.
우리 옛 선인들은 기러기에 4가지 덕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첫 번째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가을이면 찾아오고 봄이면 돌아가니 믿을 수 있다고 하여 신(信)이오, 두 번째는 하늘을 날 때는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따르는 무리들이 화답을 하니 예(禮)요, 세 번째는 한번 짝을 맺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않으니 절(節)이요, 네 번째는 무리지어 밤낮으로 살피고 생활하여 서로를 보호하니 그 지혜를 예폐(禮幣) 즉, 고마운 뜻을 표하기 위하여 보내는 예물로 사용하고도 남는다고 하였다.
어느 동물인들 나름대로의 지혜가 없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기러기에 대한 믿음과 애정은 다른 동물들 보다 훨씬 더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기러기는 앞에서 말한 4가지 덕을 지니고 있는 동물로 신의가 있고 또한 예의가 있으며 평생을 혼자 살아가며 정절을 지키는 지조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지혜롭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유교사상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에 더욱 기러기를 추켜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있으면 “기럭 기럭” 울음소리를 내면서 하늘에 무리지어 나르는 기러기를 대할 때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기러기의 4덕을 생각하며 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음 한다.